술잔 돌리기
술잔 돌리기
  • 제주신보
  • 승인 2018.02.1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양재봉, 환경운동가/수필가

나라마다 문화가 다르다. 자랑스레 계승해야 할 전통문화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부끄러운 문화도 있다.

술 문화가 그렇다. 독한 술을 좋아하는 민족, 우리처럼 갖가지 술을 제조하여 마시는 민족, 건강을 위하고 사교로 요긴하게 이용하는 민족도 있다.

술은 신이 내린 음식, 신과 통하는 음식이라 하여 제를 지낼 때 제주로 사용한다. 역사가 깊은 나라일수록 내막도 깊다. 잘 이용하면 그렇게 무속신앙까지도 아우르고 하나로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술,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으며 즐길 수 있는 술은 이젠 우리 문화에 없어서는 안될 부동의 자리를 틀고 앉았다.

그런다고 술은 우리 생활에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필요불가결한 경우가 아니면 경제적인 면을 생각하며 선택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의 술 문화는 다양하다. 많은 종류의 전통주를 보유하고도 모자라 수입 양주와 함께 일본산 맥주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판이다. IMF로 위기이던 경제가 풀린 지 그리 오래지 않았건만 한심한 일이다. 우리 것을 더 소중히 해야 함에도 외국산 의존 비율이 점점 높아만 가고 있으니.

또한 술 문화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 술잔 돌리기다. 마음을 주고받는 방법으로 술잔 돌리기만 한 것도 드물다. 친근감을 더해 가며 주거니 받거니 보기에도 좋다. 나도 그런 분위기를 즐긴다.

하지만 조심해야 할 때가 있다. 상대방이 운전해야 하거나, 자리를 끝내고 중요한 일이 있다고 할 때는 굳이 권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몸이 정상이 아닐 때는 오히려 음주를 만류해야 한다. 진정으로 상대를 배려한다면.

얼마 전이다. 다정한 사람들끼리 모임이 있었다. 겨울철 혹한기라 감기를 앓는 사람도 몇몇 끼어 있었는데 술자리가 벌어졌다. 감기를 앓고 있는 사람이 술잔을 비우고 그 술잔을 내게 권한다. 기분이 께름칙했다. 콜록거리는 저 사람 감기 옮으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에 사양했다.

지난날 무리한 노동으로 땀을 흘렸던 탓인지 몸살기도 있었다. 감기가 들 것 같다는 생각으로 조심하고 있었기에 거듭 권해 오는 걸 또 사양했다. 더욱이 술좌석이 끝나면 서예 지도를 가야 할 시간이었다. 술 냄새 풍기는 것은 문하생에게 좋은 이미지를 남기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늘 피해 왔던 터다.

그는 사양하는 나를 안 좋은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술잔을 놓지도 않고 멍하니. 그런 바람에 끝내 분위기를 생각해 받아 마셨다. 그 탓인지 다음 날부터 감기가 시작됐다. 열흘 동안 몹시 부대껴 할 일도 못하고 강의도 쉬어야 했다.

나는 감기에 걸렸을 때 외식을 하게 되면 주인에게 부탁한다. 남에게 감기를 옮기게 될까 봐 그러니 죄송하지만, 반찬 그릇 하날 더 달라고. 그리고는 따로 먹는다. 물론 내 술잔을 권해 본 적도 없다.

고배율 현미경으로 세균을 바라보는 일이 종종 있다. 손바닥의 체액을 현미경에 놓으면 눈으로는 보이지 않던 세균이 고물거린다. 그런 것을 보면서 세균 감염에 대한 정도 이상으로 과민해진 점도 있겠지만, 점차 더 강력한 균의 공격을 받는 현실이다.

좋은 문화를 유지하고 건전하게 발전시킬 방법은 지켜야 할 예절이 있으면 지키는 것이다. 무지한 사람으로 치부되고 싶지 않으면 지킬 것은 지키자 함이다.

술잔을 돌리는 사람이면 내게 가깝고 소중한 사람 아닌가. 보균자가 아닌 다음에야 술잔을 돌리는 거야 왜 나쁘랴. 오늘은 그 소중한 사람 어디서 만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