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의 의미


‘사의(士儀)’를 지은 허전(許傳)은 제사의 근본을 “성인을 추앙하고 그것을 이어갔던 것이 제사인데 사람의 천성(天性:인간의 자연적인 본성)에 근본을 둔 것이다”라 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제사를 지내는 이유를 설명한다. “대체로 아들과 손자는 그 할아버지나 아버지에 대하여 은혜가 무겁고 친분이 지극하다. 형기(形氣:모습)이 서로 연속되고 혈맥(血脈:유전자)이 서로 이어지는 데다가 거처(居處:같은 장소)에서 서로 접촉하고, 웃고 말하는 가운데 교감이 이루어지면서 먹고 마시고 서로 즐거워하다가, 하루아침에 돌아가시면 이미 죽었다고 차마 모른 채 곧장 잊어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자연스러운 이치이고 사람의 정(情)이다.그렇기에 비록 고복(皐復:혼 부르기)을 하여 혼백(魂魄)이 돌아오지 않더라도, 방금 전에 먹고 마시던 부모에 대하여 차마 음식을 끊어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부모가) 잡수던 음식을 올려두는 것은 살아계신다고 생각지 않을 수가 없어서이다. 비록 영원히 신체를 땅속에 옮기고 나서 체백이 흩어졌음에도 옛적에 부모에게 음식을 갖추어 올리던 행동을 곧장 폐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음식을 올리는 예로 그 살아 있을 때를 나타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제사 때는 부모가 살아있다고 여겨 그렇게 올려 지낸다. 과거 3년 상(喪) 제도는 대상이 끝날 때까지 아침저녁으로 상식(上食)을 올렸다.


3년 상 이후 기일 제사는 4대 봉사(奉祠)까지 지내다 그 제사를 폐하게 되면 1년에 한 번 공동으로 모시는 것이 시제(時祭)이다.


‘예기(禮記)’에 “제사는 마음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요. 마음속으로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다. 마음이 조심스러워져서 예의로 받드는 것이 아니라 오직 현자(賢者)라야 제사의 의리를 극진하고 행할 수 있다”라고 했다.


제사를 지내는 이의 품성(品性)을 지적한 것이다. 부모를 위하는 것이 바로 후손들이 나를 생각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추원보본(追遠報本), 즉 죽은 자와 산자의 관계를 이어주고 그 근본을 잃지 않는 것,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성의로써 가다듬는 것이 진정한 제사의 본질인 것이다.    

 

▲조상을 숭배하는 동자석의 상징


유명(幽明)의 세계는 무덤이다. 무덤은 홀로 마을과는 멀리 떨어져 있어 그윽하고 고요하다.


그래서 후손들은 동자석을 세우고 베롱 나무를 심어 외롭지 않게 벗하게 하고 어둡지 않게 꽃을 보게 한다.


산담 또한 전망이 막히면 답답하기 때문에 전망이 잘 보이도록 산담 앞을 트게 하고 경치가 잘 보이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무덤의 동자석은 바로 조상을 위해 만든 석상인데 문인석, 망주석보다도 제주의 봉양적 특성을 잘 보여 준다.


실제로 동자석을 보면 유교의 예사상을 잘 알 수 있다.

 

동자라 부르는 나이를 지봉 이수광은 10세부터 15세까지로 이해하고 있다. “사람이 처음 낳을 때를 영아(嬰兒)라 하고, 3세를 일러 소아(小兒)라고 한다. 10세를 동자라 하는데(…)적어도 15세를 성동(成童)이라 한다. (…)또는 14세 이하를 동관(童丱)이라 한다. 동관이란 쌍상투를 튼 아이를 말하는데 조선에서 적어도 15세까지를 동자로 부르고 있는 듯하다.”   


옛날의 ‘시동(尸童)’은 제사와 관련이 있는 동자다. 원래 ‘시(尸)’는 늘어놓는다는 뜻으로 엎드려 있는 모양을 상형하였다.


시동(尸童)은 유교에서 행하는 기제사(忌祭祀) 때 죽은 조상을 대표하는 어린아이를 지칭한다. 일시적으로 조상의 상징적인 영혼이 되는 것이다. 친척의 아이들 중에 선정하여 제사상에 앉혀 제사의 예를 받도록 하는 것이다.


‘주자어류(朱子語類)’에, “옛사람들이 시동씨(尸童氏)를 세웠는데, 이는 산사람이 생기를 가지고 가서 신령(조상신)에게 접하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시동은 접신(接神) 하는 매개 역할을 하고 있다.


동자석의 역할 중 조상숭배의 기능이 가장 잘 담겨 있다. 조상숭배는 봉양으로 시작된다.


봉양(奉養)이란 자기보다 윗사람인 부모, 조부모를 극진하게 대하는 것을 말한다. 


필자는 2003년 발간한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에서 동자석의 기능을 정리했다.

 

물론 이것은 2000년 이 책자 이전에 동명(同名)으로 동자석 도큐멘트 전을 연 후이고, 다시 2012년 부산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제주도(濟州島) 동자석(童子石) 연구(硏究)’에서도 아래와 같이 밝혔다.

 
동자석의 다양한 기능은 ①숭배적 기능:사자(死者)를 위해서 제례를 행하기 위한 공경(恭敬), ②봉양적 기능:영혼을 위한 심부름꾼, 죽은 이를 공양하는 동자(侍童)를 상징, ③수호적 기능:사자(死者)를 악귀에서부터 수호하기 위한 임무의 수행, ④장식적 기능:가문의 권위(權威)를 알리기 위한 무덤의 치장(治裝), ⑤주술적 기능:사자의 영혼을 위무(慰撫) 하기 위한 종교·신앙적인 기능, ⑥유희적 기능:사자와 벗해 놀아주는 아이, 또는 말벗의 역할을 한다.


물론 이 기능에는 무속, 도교, 천주교의 상징도 있지만 주로 조상숭배와 같은 유교적 기능이 크다는 것이다.


이것은 동자석이 손의 지물(持物) 가운데 홀, 붓, 부채와 술잔·술병을 든 동자석이 많고, 또 뱀, 새, 신칼, 방울, 울쇠, 우금, 거울, 부채같이 무속, 민간신앙의 영향도 있고, 연꽃, 십자가를 든 동자석으로 볼 때 천주교와 불교같이 타종교의 요소 등도 보인다.

 

▲제주도 유교의 전파


제주도 유교가 본격적으로 전파된 시기는 여말선초(麗末鮮初), 조선의 개국을 전후하여 정치적 이유로 유배오거나 화(禍)를 피해 낙향한 입도조가 들어온 시기와 일치한다.


제주에 유교가 들어온 시기는 기록상 15세기이다.

 

1406년 남평 문씨 문방귀 집안과 1411년에 제주 고씨 고득종이, ‘주자가례’에 의해 유교식 상·장례 제도를 도입하고, 또 몸소 산담을 만들고 3년간 여막살이를 시작하였는데 당시 이에 호응한 사람이 10여인이나 되었다.


제주도에 현존하는 동자석으로 보아 출현한 시기는 17세기(1632년) 이후이다.


현재까지 헌마공신 김만일의 동자석보다 편년이 높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