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맞이 단상
설맞이 단상
  • 제주신보
  • 승인 2018.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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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언, 시인·수필가

숨었던 풍경들이 살아난다. 고향 가는 승차권을 구매하기 위하여 밤새우며 길게 줄 선 사람들, 거북이걸음으로 고속도로를 이동하는 귀성객의 끝없는 차량 행렬, 양손에 선물 꾸러미 들고 한복 곱게 입힌 자녀를 앞세워 가며 고샅으로 들어서는 젊은 부부들….

낙엽귀근이나 수구초심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우리 마음 어딘가엔 본향으로 이끌리는 구심력이 숨어 있다 명절을 맞으면 달뜨는가 보다. 이런저런 사연으로 고향을 등진 사람도 옛날을 더듬게 되고,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실향민은 목 빼며 산 너머를 응시한다.

누군가는 사람을 섬이라 했지만, 결국 단절의 고독을 이겨내는 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위로가 아닐까. 그러므로 세월에 묻힌 인연들이 그리움으로 차곡차곡 쌓이다 다시 만나면 청국장처럼 풍기는 사람 냄새에 한껏 취하려니.

오늘은 가정마다 생기 넘치는 웃음꽃이 피어날 것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손주들의 재롱에 노년들의 얼굴은 주름살을 펴고, 부엌에서 제수를 마련하며 나누는 고부간의 대화는 꿀처럼 이어질 것이다. 먹기도 전에 배 부르는 풍성한 식탁 앞에 모여 앉으면 허기졌던 과거가 아련하고 가뭇없이 흘러가 버린 세월에 허허로운 생을 반추하기도 하려니.

내 고향 마을에서는 1980년대 들어서기까지 대부분 가정에서 양력 설을 쇠었었다. 설이 다가오면 어린 나에게 주어지는 심부름이 있었다. 차례를 지내는 친인척 집에 제수용으로 말린 옥돔을 전하는 일이었다. 때로는 작은 술병이 딸리기도 했다. 빙떡이라도 하나 먹고 가라는 어른들의 말씀을 사양하며 다음 집으로 걸음을 재촉했었다.

설날이 지나고 며칠 동안은 세배하러 다니는 어른들의 발걸음이 동네는 물론이고 이웃 마을까지도 분주했다. 그 풍습이 아이들에게도 자연스레 전해졌다. 설 이튿날이나 그다음 날까지 또래들과 어울려 면식도 없는 낯선 집안을 방문한 적이 여러 번이다. 절값으로 보통 식혜 한 잔이었지만 이장 댁은 달랐다. 멸치국수 사발은 그 시절 최고의 별미였다.

외할머니도 뵙고 싶은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2㎞ 남짓 떨어진 윗마을로 달려가면 얼마나 반겨 주시던지. 일찍 돌아가셔서 기억에 없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외할머니를 통해서 느꼈을 것이다.

뒷마당에 자리한 두 그루의 벤줄나무에는 노란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조그만 호리병 모양의 귤에는 씨들이 많이 들어 있었지만, 과일이 귀하던 시절이니 한 보따리 따 주시고 공책 사라며 구겨진 지폐까지 건네주시던 할머니의 마음을 읽을 때면 지금도 눈가가 촉촉해 온다.

허전하게 이번 설을 맞는다. 요양원에 계신 어머님의 빈자리가 휑하다. 바쁜 회사 일로 함께 못하는 둘째 아들네도 아쉽다. 그래도 말이 많이 늘어난 손녀와의 대화가 다소라도 위안이 되겠지 싶다.

자식들은 적은 수입에 부모나 친인척 선물로 신경 쓰이고, 잡다한 질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그렇다고 이런저런 이유를 들며 멀리 여행을 떠나는 마음이랑 돌아볼 일이다. 얼굴만 대해도 흐뭇해지는 게 부모의 마음 아닌가. 덧붙여 친인척을 찾아뵙는다면 좋은 시간으로 남게 될 것이다. 제 편한 대로만 살다 보면 정말로 외로운 섬이 되고 말 테니까.

사람의 값은 스스로 매긴다기에 부끄러운 마음으로 기도한다. 기침소리 새어나는 허름한 집안의 독거노인들에게도 마음의 한파가 녹아들고 축복의 통로로 이어지기를. 단 한 번이면 어떠랴. 세상 사람들에게도 인사 올린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 가득한 시간 빚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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