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한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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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운 동티모르 교육자문관/시인/수필가

“너무 예뻐요. 꼭 갖고 싶었던 스커트예요.”
“정말 고마워요. 빨리 입어보고 싶어요!”


까무잡잡한 얼굴에 이가 유난히 희고, 미소가 더 없이 예쁜 여학생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나는 동티모르 도미니꼬 고아원 성당에서 2주일에 한 번씩 미사에 참례한다. 이곳에는 초등학교에서 대학생까지 40명의 고아 또는 결손 여학생들이 생활한다. 그러나 그녀들을 볼 때마다 한 번도 그녀들의 얼굴에서 아주 작은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다. 항상 해맑고 아름다운 미소로 ‘본디아(아침 인사)!’ 또는 ‘보따르디(오후 인사)!’ 하며 인사를 할 뿐만 아니라, 먼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가끔은 성직자에게 하듯이 내 손등에 친구(입맞춤)을 한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으나 차츰 익숙해졌다.


그녀들은 비다우 성당 9시 영어 미사에서 미사 해설과 영어 성가를 부르는데, 나는 천상의 목소리가 이런 소리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곤 했다. 2명의 여학생이 기타 연주를 하고, 초등학생들도 영어 찬송을 천사처럼 부른다.


나는 이번에 한국으로 휴가를 가면서 학생복 판매점을 경영하는 친구에게 고아원 얘기를 하며 미리 옷을 부탁했었다. 물론 그녀들도 수수한 유니폼을 입고 미사에 나오지만, 조금 나은 품질의 옷을 주면 좋을 것 같았다. 친구는 흔쾌히 수락했고 치수를 알아오라고 했다. 나는 미사 중에 칫수를 눈으로 대충 재어 보았다. 작은 아이들이 6명, 큰 애가 9명, 나머지는 보통으로 분류했다.


학생 수에 맞게 품질 좋은 학생용 스커트 40벌을 기증받았다. 또 수녀님들을 위해서 흰 블라우스 20벌도 얻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물건을 어떻게 운송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20㎏을 초과했다. 결국 내 짐은 모두 생략하고 이 짐만 갖고 가기로 했다. 내가 면세품으로 산 것은 면세점에서 라면 한 박스가 전부였다. 발리에서 위탁 수하물이 초과되어 캐리어를 재정리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결국 모두 갖고 올 수 있었다. 마음속으로는 좋은 일을 하는데 결국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 걱정되지 않았다.


수도 딜리에 도착하여 비행기에서 내리자 40도 가까운 열기로 숨이 막혔다. 제주에서는 폭설과 한파로 자동차 운행도 어렵고, 비행기는 결항 지연이 속출했었다. 어떤 친구는 냉탕과 열탕에서 사우나 한다고 빗대기도 했다.


일요일 낮에 전달하기로 했다. 평소에 걸어서 15분 정도의 거리인데, 너무도 좁은 미크롤렛 버스를 타면 운전자와 손님들이 싫어할 것이요, 택시를 타기에는 좀 가까운 거리였다. 결국 걸어서 가기로 했다. 30분이면 될 것 같았다. 땀이 비오듯 흘러내렸으나, 쉬엄쉬엄 가니 별로 힘들지 않았다. 아버지가 딸의 옷을 갖고 집을 찾아 간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힘이 났다.


아이들은 일찍 점심을 마치고 강당으로 모였다. 한국에서 여러분의 처지를 잘 이해하는 분이 좋은 옷을 기증해 주셔서 전달한다는 내용을 얘기했다. 서로 입어보고 흡족해 하는 모습에 몇 달 동안의 생각과 행동의 피로가 사라졌다. 이곳엔 우리나라 60년대처럼 옷가게가 거의 없다. 다른 나라에서 입던 중고 옷들을 구해다 좌판 판매한다.

 

물론 신품을 파는 옷 가게들이 좀 있지만, 아주 특별한 계층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다.
새삼 먹고 입고 자는데 별 걱정없이 지내는 우리가 자랑스러워진다. 그러나 지구 반대편에서 어려움을 겪고 일어서려는 국가나 사람들의 처지도 가끔씩 생각해 봐야 한다. 손을 펴 함께 가려는 노력도 물론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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