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고향 제주
남편의 고향 제주
  • 제주신보
  • 승인 2018.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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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림, 수기작가

청명한 아침 창가에 앉아 하늘을 보니 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이 넘실넘실 춤추며 가볍게 지나간다.

우리 어머니 모시치마폭이 나를 감싸고 내 웨딩드레스가 펄럭이며 춤을 춘다. 빨려가듯 옛날로 나도 가고 있다.

객지에서 오래 그리던 고향땅. 내 부모 형제와 같이 살던 곳. 친구들과 많은 정을 쌓던 추억들. 저 구름 속에 모두가 있어 한참을 들떠 헤매는데 갑자기 다들 떠나고 잔잔한 푸른 바다가 하늘에 남실대고 있다.

번잡한 뉴욕 거리를 서둘러 걷다가 순간 멍하니 아무소리도 안 들리고 보이지도 안으면서 나 혼자 덩그러니 서 있다.

한참 뒤 주위가 조금씩 보이면서 ‘여기가 어디인데 왜 내가 여기에 서있지?’ 차츰 정신이 들면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래 언젠가는 돌아 갈 거야. 내가 살던 곳으로. 어려웠던 일이 많았어도 부대끼면서 살던 그때가 진짜 삶이었지.”

나라가 가난해서 부유한 나라에 왔지만 보리밥을 먹어도 내 고향에서 내 부모 형제와 같이 어울려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르는 사람도 있다.

어느 영국 시인은 “푸른색 일색의 이탈리아 하늘도 좋지만 산봉우리를 신비롭게 하는 우리나라 안개가 그만 못 하리”라 노래했다.

이렇게 사람은 항상 고향에 애착이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어찌 어찌 세월이 흘러 35년을 넘긴 어느 날 남편이 심장 마비로 쓰러져 대수술을 받고 기적으로 살아났지만 얼마 못산다는 진단을 받았다.

비행기를 탈 만큼 회복이 되니 그리던 고향에 가서 어머니 곁에 묻히겠단다. 안 오면 한이 될까봐 서둘러 10년 전 남편의 고향 제주에 와서 자리를 잡았다.

남편과 나는 내 나라 내 고향이니까 모두가 반가워할 것만 같은 행복한 마음만 갖고 왔다.

부모님은 안 계시지만 형제 친척들이 있고 또한 친구들이 있으니 겸손하게 제주를 배우면서 누구하고도 잘 지내고 싶었다.

그러나 상전벽해(桑田碧海), 긴 세월 동안 내 나라 내 고향은 참 많이 변해 있었다. 자연 환경과 사회적 발전은 마음이 흐뭇하기도 했지만 사람들에 성향이 참 많이 강해 졌다.

옛날엔 밥을 굶어도 인간성은 변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요즘은 경쟁시대에 살다보니 어리석은 진실보다는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만 사고방식이 꽂혀 있어 참 당황스러웠다.

진정한 고향은 땅 보다 인간관계라고 했는데 가족과도 이렇게 다른 생각 속에 오래 살았다니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였다. 말을 배울 필요도 없는 내 고향에 왔는데도 미국에 가서 느꼈던 그 외로움을 왜 여기에 와서도 느낄까. 객지에 외로움은 당연하고 오히려 도전에 힘이 되었다.

하지만 고향에 와서 외로움은 실로 서운하고 씁쓸했다. 그래서 옛 시인들이 한결같이 노래를 했나보다. “그리고 그리던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더라”고.

그러나 고향만 변한 것이 아니고 우리도 많이 변했으리라. 인정 하고 10년을 적응 하니 이젠 마음이 편하고 넉넉하다.

남편도 고향에서 건강해졌고 60년 만에 만난 초등학교 동창 몇 명과 어울려 제주 안에서 여기 저기 돌아다니는 재미가 쏠쏠한 모습이다.

오래 전부터 마음속에서 간절히 원하던 바다.

이제 제자리로 돌아온 걸까. 시어머니 산소를 찾는 날은 남편이 제일 행복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