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 공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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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수 논설위원
지난 지방선거 때 일이다. 한 지인이 출마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며 의견을 구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출마의 변을 밝히면서 거들어주길 기대하는 눈치였다. 훈수를 둘 형편이 아닌지라 넌지시 가족들의 반응에 관해 물었다. 그러자 그는 고민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라고 했다. 며칠 후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집사람이 완강히 반대해 출마를 접기로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족 공천, 부인 공천이란 단어를 언급했다. 중앙정치든 지방정치든 간에 정치지망생들에게 1차 관문은 가족회의를 통과하는 것이다. 사실 1차 공천장은 배우자가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ㆍ13지방선거와 관련해 도지사 및 교육감 선거 예비후보자들이 최근 등록했다. 일단 1차 관문을 통과했다고 할 수 있다. 가족회의에서 만창일치로 통과한 이도 있을 것이고,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공천장을 받은 이도 있을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출마한 이후에는 가족들도 상당 부분의 짐을 짊어져야 한다. 좁은 제주지역사회에서 가족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유권자들 관심의 대상이다.

한 현역 지방의원은 서로 상대 후보의 사정을 꿰뚫고 있는 지역선거에서 가장 두려운 말은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속담이라고 했다. 그만큼 가족과 친지, 지인으로부터 우선 후한 점수를 따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다. 요즘 들어 새벽 운동에 나서면 심심찮게 ‘명함’을 나눠주며 고군분투하는 후보자 가족들을 만날 수 있다. 현재는 유권자들도 예열 단계인 모양이다. 부창부수(夫唱婦隨)의 심정을 헤아려 명함을 받아줄 수도 있지만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 유권자들도 보인다.

도의원 및 교육의원 예비후보자 등록은 다음 달 2일부터 시작한다. 선거구 획정 지연으로 일부 선거구에서 혼란도 있지만, 도내에서 대략 110명 내외가 출사표를 던질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일부는 지금도 가족 공천을 놓고 치열하게 ‘밀당(밀고 당기기)’을 하고 있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을 다룬 영화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를 보면 정치인 부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대사가 나온다. 부인 클레멘타인은 채용 하루 만에 보따리를 싸고 떠나려는 여비서에게 “거칠고 냉소적이고 고압적이며 무례한”사람이라며 남편 흉을 본다. 반면에 그런 괴팍한 성격에도 노년에 수상 자리에 오른 처칠에게는 “국민들도 나처럼 당신을 좋아하고 존경하면 좋겠다”며 응원을 보낸다. 6ㆍ13선거 가족 공천장을 쥐고 있는 모든 배우자의 심정도 이럴 것이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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