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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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숙 제주복식문화연구소장

집 떠나 사는 자식들은 한결같이 어머니의 손맛을 그리워한다. 어머니들이라고 다 음식을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식은 어머니가 만든 음식이 최고다. 오랫동안 먹어서 입에 길들여졌기 때문 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어머니표 특제 양념인 정성이 듬뿍 들어간 음식이기 때문 그런 것이 아닐까. 


정월달이면 제주에서는 많은 세시풍속이 아직도 남아 행해지고 있다. 가정과 마을이 무탈하고 풍성한 수확이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 간절한 마음은 조심함과 정성을 다하는 것으로 나타나며 할머니와 어머니들은 그런 조심함과 정성으로 삶을 지켜냈다.


참기름을 짜려고 기름집에 갔는데 아침부터 먼저 온 할머니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기다리는 사이 도란도란 이야기꽃이 만발하다. 자식들에게 나눠주려고 온전치 못한 다리를 절룩거리며 새벽부터 짊어지고 온 할머니들이다.


또 한 할머니는 친정 형제가 없어서 친정 부모님 제사를 모시기 위해 기름도 짜고 메밀도 갈아 가려고 굽어진 허리에 참깨를 짊어지고 오셨다. 외롭게 살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고, 그래서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은 부모님이 살아계셨을 때 좋아하셨던 음식인 빙떡을 지져 제사상에 올리고 있다고 한다.

 

빙떡의 재료인 메밀은 보통 갈아 놓은 가루를 사가지만 이 할머니는 메밀쌀을 사서 잡티를 골라내고 나서 가루로 갈아 간다고 한다. 재료를 깨끗하게 손질하는 할머니를 보면서 음식을 준비하는 마음이 어떠해야 하는지 새김질이 되었다. 한참 할머니 옆에서 같이 잡티를 고르며 이런저런 살아온 이야기를 듣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고단한 삶이었지만 정성으로 쓰다 듬으며 삶을 만들어 온 할머니이었다.


정성이 지긋하면 마른 돌 위에도 이끼가 낀다는 말이 생각이 났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바싹 마른 돌과 같은 삶이었지만 지긋한 정성으로 생명을 키워내며 삶을 이어오셨다. 정성을 다한다는 것은 수고로움이 반드시 뒤따라야 얻어지는 결과이다. 손과 발이 고생을 해야하고, 오랜 시간 흐트러지지 않고 인내하며 기다려야 얻어지는 것이다.


요즘 ‘간단히’라는 단어가 모든 삶의 영역을 덮고 있다. 간단하게 하면서 혹시 우리의 삶에서 수고로움은 피하고 쉽게 얻기를 바라는 마음만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정성을 다하는 손끝에서만 얻어지는 맛이 있듯이 정성을 다하는 삶에서만 얻어지는 아름다움이 있다. 그 맛과 그 아름다움을 기억하며 그리움이 있다면 아직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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