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追慕義女洪娘<추모의녀홍랑/선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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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韻 作詩 水巖 李昌俊<작시 수암 이창준>

志節香魂此寂眠 지절향혼차적면 지절 향혼 여기에 고요히 잠들었는데/

寒風木落紫芒翩 한풍목락자망편 찬바람에 나뭇잎 지고 억새꽃만 나부끼네/

丹心她意訪心動 단심타의방심동 그녀의 단심 의지 찾는 이 마음 울리는데/

盞酒饈非旅惜聯 잔주수비여석련 한 잔 술 못 올린 나그네 아쉬움 그치질 않네/

 

▲주요어휘

△志節(지절)=지조와 절개 △香魂(향혼)=여인의 넋 △木落(목락)=나뭇잎이 지다 △紫芒(자망)=억새 △翩=나부낄 편 △丹心(단심)=속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스러운 마음 △她=아가씨 저, 그녀 타 △盞酒(잔주)=한 잔 술 △饈=드릴 수

 

▲해설

지난 해 11월 26일, 제주한시회에서 시상(詩想)을 가다듬기 위하여 가을 현장체험 행사 중 하나로 의녀(義女) 홍윤애(洪允愛)의 묘소를 탐방하였다.

 

의녀 홍윤애는 조선 영·정조 때 제주목(濟州牧)에 살던 여인으로, 일명 홍랑(洪娘)이라고도 한다. 조정철(趙貞喆, 1751∼1831)은 1777년(정조 1년) 정조시해 음모사건에 연루되어 제주에 유배되어 온갖 고초를 겪는 가운데, 시중 듣던 20살 홍윤애와 서로 사랑하게 된다. 1781년 제주목사로 부임한 소론(少論)의 김시구는 정적(政敵)인 노론(老論)의 조정철을 모함하여 죽이려고 딸을 낳은 지 채 백일도 안 된 홍윤애를 잡아 들여 거짓자백을 받아내고 모진 고문을 한다. 그러나 홍윤애는 ‘공의 목숨은 나의 죽음에 있다.’며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고 형틀에 매달리는 고문으로 순절한다.

 

그녀의 묘는 유수암리 남쪽 변방 외진 곳에 여느 평범한 무덤처럼 황량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모진 고통 속에서도 숨이 다 할 때까지 임을 위해 지킨 지조와 절개, 그리고 희생적인 사랑은 시대를 넘어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하고 삶을 뒤돌아보게 하였다. 고결한 여인이 이 땅에 계셨다는 사실에 깊은 묵상(黙想)과 함께 각박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삶의 의미를 가르쳐 주는 것 같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아이고, 술 한 잔 올리고 올 걸. 못내 아쉬웠다. 기회 있으면 퉁소(簫)와 주(酒)를 갖고 가서 진혼(鎭魂)의 예를 올려야겠다고 다짐하여 본다.

<해설 수암 이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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