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권(旅券)의 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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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중 논설위원
여권(旅券)은 해외여행을 하는 자국민을 위해 정부가 발행하는 신분증명서다. 곧 여행자의 신분을 증명하면서 외국 정부에 보호를 부탁하는 문서다. 외국에선 여권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구금되거나 추방되는 사례가 많다.

여권의 역사는 꽤 오래됐다. 기원전 450년께 페르시아 제국의 한 신하가 유대 여행을 청하자 왕이 강을 넘어서도 효력을 발휘하는 문서를 써줬다는 내용이 있다. 중세 아랍에선 세금 납부 영수증이 여권을 대신했다. 19세기 이후 유럽국가의 서로 다른 여권법은 많은 문제점을 노출했다. 1920년 국제연맹이 표준안을 만들면서 여권은 세계여행의 필수품이 됐다.

이례적인 건 2004년부터 유럽연합(EU)에선 ‘애완동물 여권’이 통용된다는 거다. 이게 있으면 EU 내 국경을 통과할 때 검역을 면제받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여권이 제도화된 건 1906년 ‘한국인외국여권규칙’을 제정한 것이 효시라고 한다. 일제를 거친 뒤 1946년 군정법령으로 ‘조선에 출국 또는 입국자 이동의 관리 및 기록에 관한 건’으로 개정됐다가 1982년 ‘여권법’이 제정된 후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의 여권에는 3종류가 있다. 일반여권과 관용여권, 외교관여권이다. 그중 외교관여권 소지자의 특권이 만만치 않다. 세계대전 때 보안상의 이유로 출입국심사가 생긴 뒤 외교관여권의 가치가 더 커졌다고 한다.

그래서 발급 절차가 까다롭다. 다른 2가지 여권에 비해 발급 대상도 적다. 5년짜리는 전·현직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 국무총리와 외무장관, 대사,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 등으로 제한된다. 2년짜리는 특별사절이나 정부대표 등에게 발급된다.

▲최근 한국 여권이 지구촌에서 가장 파워가 센 여권 1위에 등극했다고 한다. 글로벌금융자문사인 아톤 캐피털의 ‘여권지수’에 따르면 한국 여권은 162국을 비자 없이 방문할 수 있는 기록을 세우며 싱가포르와 함께 공동 선두를 차지했다.

그간 세계의 프리패스로 통했던 미국은 캐나다, 스위스와 함께 5위 그룹에 머물렀다. 북한은 87위 그룹에 랭크됐다. 현재 북한 여권에 비자가 면제되는 국가는 9국에 불과하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여권지수에서 수위를 차지한 건 그만큼 국격이 높아졌다는 뜻이다. 요즘 한국 여권이 아주 비싼 가격에 불법 거래되는 것도 그를 방증한다. 그래선가 한때 국회의원조차 외교관여권을 요구하던 꼴이 떠올라 우습다. 그나저나 우리의 외국여행 품격도 그런 여권 파워에 걸맞았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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