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발 광풍에 사라져가는 4·3 유적…보존 대책 서둘러야
(3)개발 광풍에 사라져가는 4·3 유적…보존 대책 서둘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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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4·3의 진상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유적이 개발 광풍 속에서 사라지면서 4·3의 슬픈 역사도 잊혀져가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에 따르면 도내 전역에 흩어져 있는 4·3유적은 총 597곳에 이르고 있다. 유형별로 보면 뒷골장성과 같은 4·3성터는 66곳, 표선 한모살 등 주민 집단 학살터는 152곳, 경찰 주둔소 82곳, 무장대 은신처 35곳, 곤을동 등 잃어버린 마을 108곳, 주정공장 등 수용소 18곳, 희생자 집단묘지 6곳, 비석 41곳, 역사현장 62곳 등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 제주도가 보전·관리하거나 정비 계획이 있는 곳은 북촌 너븐숭이, 낙선동성, 수악 주둔소, 곤을동, 다랑쉬굴 등 18곳에 불과한 실정이다. 나머지는 대부분 뒷골장성처럼 사유지여서 현재 훼손이 급격하게 이뤄지고 있다.

 

 

▲ 진동산 뒷골장성의 현재 모습. 토지 소유주가 개발을 위해 굴삭기를 동원해 밀어버리면서 성이 완전히 사라졌다.

▲개발 속에 사라지는 4·3유적


4일 제주시 한림읍 상대리 4225번지 뒷골장성 4·3 유적 터. 과거 이곳 일대에는 한림읍의 북쪽 끝 마을인 귀덕리에서 남쪽 끝 마을인 월령까지 10㎞에 달하는 장성이 있었다. 제주 4·3사건 당시 마을 사람들이 무장대의 습격을 막기 위해 1948년 말에서 이듬해 봄까지 힘들게 성을 쌓았다.

 

하지만 현재 4·3의 비극을 보여주는 이 성은 자취를 감췄다. 주변 택지 개발로 서서히 사라지다가 지난 2015년 11월 토지 소유주가 개발을 위해 278m 가량 남아 있던 성벽을 굴삭기를 동원해 밀어버리면서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당시 제주특별자치도가 이곳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하려고 준비 중이었다.


이와 함께 4·3 당시 도남 등지에 소개령으로 내려갔던 아라리 주민들이 마을 재건을 위해 돌아온 후 산담과 밭담을 등짐으로 날라 성을 쌓은 ‘인다마을 4·3성’의 경우 주변 부동산 개발 등으로 서서히 허물어지다가 최근 20여m만 남은 상태다. 이마저도 아라동 택지개발 사업으로 사라질 뻔 한 것을 마을 주민들의 반대로 간신히 지켜낼 수 있었다.

 

또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토산리, 남원면 의귀리·한남리·수망리 중산간 주민 수백 명이 희생당한 표선 한모살의 경우 주변에 표선민속마을, 대형 리조트 등이 들어서면서 훼손이 급격하게 이뤄졌다. 또 최근에는 일부 남아있던 구간마저 도로 확장 공사를 하면서 사라지고 있다. 

 

 

▲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 수악주둔소의 모습. 현재 제주도 수악주둔소 1920㎡에 대해서만 등록문화재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4·3 유적 훼손 막을 제도 미비 


상황이 이렇지만, 4·3 유적의 훼손을 막을 수 있는 제도는 미비한 실정이다. 2009년 5월 제주도는 4·3 유적의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 ‘4·3 유적지 보존 및 관리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지만,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조례에는 ‘도민은 4·3 유적지가 원형 보존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제6조), 관련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유적지 지정과 사유지일 경우 소유자의 동의 등을 규정(제10조)’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4·3 유적지를 훼손하거나 파괴해도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없는 실정이다. 특히 사유지에 있는 4·3 유적지의 경우 보존하기가 어렵다. 조례 자체가 사실상 선언적 의미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등록문화재 지정도 지지부진하다. 등록문화재는 근대문화유산 가운데 보존 및 활용 가치가 높은 유적이나 건축물, 예술작품 등을 국가·지방문화재에 준해 지정하는 제도다. 현재 근대문화유산인 제주 4·3 유적들 가운데 단 한 곳도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곳이 없다. 

 

제주도는 지난 2015년 ‘4·3 유물·유적 등록문화재 등록대상 학술조사’ 용역을 통해 남원읍 신례리 수악주둔소, 애월읍 어음1리 머흘왓성, 조천읍 선흘리 낙선동성, 서호동 시오름주둔소, 화북동 곤흘동 잃어비린 마을 5곳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하기로 했지만, 현재 수악주둔소 1920㎡에 대해서만 등록문화재 지정을 추진 중이다. 나머지는 토지 소유자들의 동의를 받지 못해 등록문화재 지정에 차질을 빚고 있다.


특히 제주도가 직접 관할하는 4·3 유적조차 제대로 관리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4·3 당시 수용소였던 제주시 건입동 주정공장 터의 경우 제주도가 위령탑 건립 등 추모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2011~2014년 38억원을 들여 부지 5272㎡을 사들였지만, 현재까지 방치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용진각~제주항 도로 확장 과정에서 공사업체가 폐자재를 무단으로 쌓아놨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또 최근 잃어버린 마을인 제주시 화북동 곤을동의 경우 안내 표지판이 절반가량 동강났지만, 보수가 이뤄지지 않았다.

 

 

▲ 뒷골장성의 사라지기 전 모습. 이 성은 4·3사건 당시 무장대의 습격을 막기 위해 쌓았다.

▲4·3유적 보전·활용방안 마련 필요


4·3 유적의 경우 사람들이 눈으로 직접 4·3의 실상을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에 교육적 가치가 높다. 독일, 폴란드 등 유럽 국가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벌어졌던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기억하기 위해 아우슈비츠·다하우 수용소 등을 수십 년이나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 둬 교육현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도 그 이유다. 현재 4·3 유적이 개발 광풍 속에서 급격하게 훼손되고 있는 만큼 체계적인 유적 보존 활용방안을 모색할 때다.


4·3 유적 가운데 등록문화재 등록이 가능한 유적에 대해서는 하루빨리 등록문화재 지정이 이뤄져야 한다. 또 제주도 차원에서 중요 유적에 대해서는 ‘제주특별자치도 등록문화재 등록제도’를 도입하는 방안도 있다. 일본의 경우 정부의 등록유형문화재 제도와는 별개로 지방단체에서 조례를 통해 근대건축물 보존을 위한 등록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4·3 유적의 경우 등록문화재 추진 검토 대상 이외에도 중요성이 인정되는 유적이 상당수에 이르는 만큼 이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또 현재 4·3 유적에 대한 조사는 지난 2000년대 초반 기초조사 차원에서 이뤄져 현재 훼손 여부 등 실질적인 현황이 파악돼 있지 않다. 최근 부동산 개발로 4·3 유적 곳곳에서 훼손되고 있는 사례가 발생하는 만큼 행정 당국이 유적 분포 실상과 함께 유적의 잔존실태 및 위치 등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   


양윤경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은 “4·3 유적의 경우 현장 상황을 후대에 잘 알릴 수 있어 교육적 가치가 높아 보전 등이 이뤄져야 하지만, 현재 대부분의 유적이 관리가 안 되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방치된 수준”이라며 “개발 광풍 속에 훼손이 급격하게 이뤄지고 있는 만큼 행정 당국이 단기적·중기적·장기적 대책을 마련해 4·3 유적을 보전·활용하지 않으면 조만간 모든 4·3 유적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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