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앳불, 축제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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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진 동화작가

어둠이 내리는 한라산으로 들불이 번지기 시작했다. 붉은 띠를 이어놓은 듯 보이다가도 꺼질 듯 되살아나고 이내 화염을 내뿜으며 밤하늘로 치솟는 불길이라니….

 

“어머니 나와 봅써! 방앳불 놓아 싱게 마씸.”

 

아들이 던지는 무심한 말에도 어머니는 대답이 없었다.

 

“그만 이제 불라. 지금 꼬(아래아)지도 못 촞(아래아)인 걸 어디 강 초(아래아)자 오느니?”

 

할머니가 어머니를 다독였지만 이른 봄 밤하늘엔 싸늘한 공기만 적막을 채우고 있었다. 어머니는 잃어버린 누렁이를 생각하며 속을 끓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방앳불은 속절없이 타올랐고 난 오랫동안 붉은 들판을 바라보며 잠들지 못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새싹이 돋아나도 먹일 누렁이가 사라졌으니 어머니의 봄은 얼마나 허망했을까? 누렁이 때문에 까맣게 마음을 태웠을 할머니와 어머니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온다. 지금 이 시간 반세기도 더 지난 일이 파노라마처럼 선명하다. 어인 일일까?

 

당시 제주는 집집마다 소 한 두 마리씩 기르지 않는 집이 없었다. 가축은 농사를 짓는데 큰 재산이었기에 싱싱한 풀들을 필요로 했다. 이런 순박한 생각들이 들불을 놓게 하지 않았을까? 이른 바 ‘방앳불’이었다. 해묵은 풀들을 태우고 해충을 구제하기 위해 온 들판을 붉게 물들이며 방앳불은 며칠 밤씩 계속 타올랐었다.

 

지난 주 2018년 ‘제주들불축제’가 그 웅장하고 화려한 막을 내렸다. 올해는 축제기간이 그야말로 정월대보름과 겹치면서 축제 본래의 의미를 되살리기에 충분했다는 평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1997년 ‘제주정월대보름들불축제’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축제가 혹한으로 개최시기를 바꿔야 하는 아픔을 겪었고 정월대보름이라는 명칭도 빼면서 오늘날까지 제주들불축제로 이어져오고 있다. 이젠 대한민국 대표 축제가 되었다. 들불처럼 번져나가 그야말로 지구촌으로 방앳불이 번지는 양상이다. 곧 세계인이 찾는 대표축제로 자리매김할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올해는 혼잡했던 입구에서 말테우리길까지 이어지는 진입로를 소원길로 조성함은 물론 소원지들은 원형달집과 함께 하늘로 띄워 보냈다. 새별 오름을 붉게 물들이는 장관을 보며 수십만이 넘는 관람객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광활한 오름 하나를 통째로 태워 올리며 무사안녕을 비는 장관이라니….

 

그 누군들 설레이고 숙연해지지 않을 수 있으랴.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방앳불이 축제가 됐으니 말이다. 방앳불을 생각하며 들불축제를 떠올린 공무원들의 참신한 생각에 박수를 보낸다.

 

이제 축제는 끝났다. 방앳불이 자취를 감출 때쯤 제주의 봄이 시작되듯 곧 봄은 무르익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경칩이다. 개구리도 깨어나 봄의 향연에 동참하고 무자년 4월이 그랬던 것처럼 동백도 무수히 피었다가 떨어지리라.

 

우리네 방앳불이 대한민국 대표축제로 자리매김하듯 4·3 70주년을 계기로 화해와 상생의 물결도 들불처럼 번져가기를 소망해 본다.

 

방앳불을 보며 한숨 짓던 어머니도 누렁이도 가고 없지만 이제 붉게 물들었던 그 들판 아래로 벚꽃도 꽃비로 흩날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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