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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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란, 동녘도서관 글따슴 회원

일 년에 한두 번 쓸까 말까한 여행 가방을 십년 만에 실용성 있는 것으로 바꿨다.

기내 반입이 가능하고 바퀴까지 달려 운반도 용이했다.

여행 가방이란 것이 사용 횟수와는 상관없이 무거운 일상적 비중이 실린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아들 결혼 직후에 시작한 제주살이에서 서울 나들이는 일상을 뛰어 넘는 여행이다.

서울과 제주의 시공간을 공유할 수 없어 동가식서가숙하는 나와 동행하는 가방은 아주 닮은꼴임을 깨달았다.

열흘여의 나들이를 마치고 찾은 반디마을 골목엔 두터운 겨울 그림자는 흔적도 없다.

새내기들 입학식마다 찾아 든 반짝 추위와 동행한 태풍급 바람이 남긴 봄 내음일테다.

서울과 제주를 차별화한 것은 입학식 풍경만이 아닌 바람도 한 몫을 한 셈이다.

이곳과 달리 콘크리트 숲 그늘마다 위풍당당한 서울 냉기는 추위까지 가세했지만 재학생들이 손을 흔들며 환영하는 강당으로 걸어들어가는 새내기들은 추위보단 쑥스러움에 움츠러 들었다.

오히려 손을 잡은 할머니들 미소가 당당했다.

그림자 노동에 헌신하는 외할머니 숫자가 늘어나 불과 10년 새 판이해진 풍경이다.

경제적 도움까지 얹어 줄 수 있는 외가의 후광을 덮을 수 있는 친가의 친밀성은 당연히 밀린다.

시가보단 친정에 의탁하는 젊은 가정이 일반화인 추세에 따르는 신조어가 점점 다양해지는 것만으로도 또렷하게 실감할 수 있다.

물론 친가, 외가를 구분 짓는 현실적 대안들에 편승 않으려 애쓰지만 실체 없는 외부적 잣대는 선명하다. 문득 손주들이 보고 싶으면 언제든 오라는 진심어린 사돈의 배려도,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일상적 수고가 쌓인 칠 년여의 결과물인 입학식의 짧은 기쁨도 여행 가방 안에 깊숙이 찔러 넣었다.

외할머니들의 투쟁적 노고의 결과물인 재롱과 이벤트성 즐거움을 누릴 자격조차 포기한 나로선 제주 할머니란 호칭도 감지덕지다.

교장 선생님 개회사 말미를 장식한 “감사합니다!” 란 인사도 당연히 외할머니 몫이다.

축하 공연에 이은 교장선생님의 선물 증정식이 개개인 모두에게 손수 전달되었고 마술 공연까지 준비한 입학식은 새내기들의 만족도를 한껏 높였다.

인생의 순환고리인 생로병사 중 생로의 치열한 과정이었던 서울살이 정리 후, 나이듦의 병과 사의 여정지로 선택한 곳이 제주였다.

제주살이 9년차에 맞닥 드린 손주 입학은 남은 노년기에 작지 않은 파문을 던져 주었다.

누구든 피할 수없는 생로병사란 순환 고리를 뛰어 넘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선거공약 남발로 그치지 않은 지속가능한 복지 정책에도 불구하고 어린 아이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발굴하기 위한 어른들의 불분명한 분별력과 그림자 노동력의 한계점을 극복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노화의 대표적 증상인 퇴행성 관절은 급격한 운동력 감소로 이어지면서 가사와 육아 노동에 치명적이다. 당연히 그림자 노동력의 후유증은 또 다른 사회문제를 내포한다.

근본적 치유는 고사하고 단기적 효과에 급급한 에스트로이드계 땜질 치료만으로 일상의 축을 버티는 그림자 노동력을 대신 할 구체적인 사회 전반에 유용한 시쓰템 구축에 나설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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