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싶지 않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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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의, 자유기고가

산책로를 걷고 있는데 열 두어 살쯤 된 두 소년이 숨을 몰아쉬며 내게 물었다. “아저씨, 망나니 칼이 이만해요.” 뜬금없었다. 아이들은 50㎝가 될까 말까한 플라스틱 장난감 칼을 내 눈 앞으로 바싹 디밀었다. 꼬마들의 장난기 섞인 말을 모른다고 하면 그 나이에 그것도 모르느냐고 할 것 같고, 안다고 하려니 내가 망나니 칼을 본적이 없으니 곤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마침 한 야당 정치인이 현 정권이 망나니 칼춤 추듯 권력을 휘두른다는 말로 세간의 이목을 모을 때였다. 신문도 TV도 앞 다투어 그 말을 보도했다. 내가 머뭇거리자 꼬마들이 “아저씨는 텔레비전도 안 봐요.”하며 달아났다. 꼬마들이 나를 무식한 노인으로 보는 것 같아 적이 민망했다.

‘망나니 칼춤’ 나는 이 말을 딱 두 번, 그것도 소설에서 읽었다. 처음 이 말이 나오는 소설을 읽은 것은 아주 오래 전 일이다. 책 제목이 ‘단종(端宗)애사’이거나 ‘자고 가는 저 구름아’가 아니었을까. 단종 복위를 획책하다가 발각되어 새남터 형장에서 능지처참을 당한 사육신 성삼문(成三問)이 나오는 대목에서 비쳤던 것 같기도 하고 긴가민가하다.

두 번째는 최근에 읽은 ‘송호근’의 소설 ‘강화도’에 망나니의 칼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 책의 부제인 ‘심행일기’는 병조판서 신헌(申櫶)이 1876년 2월 1일부터 2월 28일까지 강화도 수호조규 체결과정을 소상히 적은 기록이다. 그는 판중추부사를 겸한 유장(儒將)이었다.

신헌은 새남터 형장에서 프랑스 주교 ‘앵베르’의 사형집행 현장을 목도한다. 자기가 체포하여 의금부에 송치한 죄인이다. 그 때 사형 집행 과정이 망나니가 칼로 죄인의 목을 치는 것이었다. 그는 망나니가 단 번에 죄인의 목을 베지 못하고, 세 번이나 시도해서 참수하는 참혹한 장면을 목격해야했다.

천주교를 포교하던 외국인 신부에게 ‘대역죄인 양인 앵베르라’라는 죄목을 씌워 목을 벤 것이다. 신헌은 형장을 나서면서 깊이 후회한다. 내가 체포하여 의금부에 넘긴 사람이 아닌가. 묘당(廟堂)의 추상같은 명령만 아니었다면 산 넘어 행방을 감추라고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는 회한과 자책으로 한동안 진저리를 쳤다.

망나니 칼춤 추듯 한다. 이 말은 역사의 기록이라는 빌미로 작가들이 묘사하는 수사의 편린이다. 현실적으로 조선왕조에서 몇 명의 죄인이 망나니의 칼에 죽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이 말은 교과서에 나오는 말도 아닐뿐더러, 이 시대의 언어는 더욱 아니다.

또 있다. 그 정치인은 대통령이 정상회담에 나선 것을 알현하러 간 것이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조공외교라는 말도 거침없이 토로했다. 알현, 그렇다. 우리의 역사는 강대국에 알현했던 슬픈 기록을 갖고 있다.

조공외교도 약소국이 겪었던 지워지지 않는 역사의 상흔이다. 이런 말을 해서 순간적으로 희열을 느낄지는 모르지만 정치가는 말을 가려해야 한다. 정제되지 않는 말을 거침없이 토로하는 건 스스로 품격을 떨어뜨리는 자충수나 진배없다. 정치가는 대중과 공유할 수 있는 말을 골라해야한다. 말은 정치가의 품격이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영국의 ‘윈스턴 처칠’경은 거짓 없는 말로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독일과의 싸움에 패했을 때, “독일 군이 한 발 빨랐습니다.”라고 어눌한 어투로 솔직하게 용서를 구했다.

그래서 영국은 다시 한 번 그를 선택했다. 대중이 듣고 싶지 않은 말을 자주하면 경박스럽게 들린다. 말에는 결기와 강단보다 유연성이 내포되어야 듣기에 편하다. 듣고 싶지 않는 말을 대놓고 하는 건, 대중을 경시하는 막말로 받아드려지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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