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교수님의 노후(老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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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김형석 교수님은 올해 99세로 백수(白壽)이시다. 노 철학자·노 수필가님 말씀을 인터넷으로 읽었다. 마치 옆에 앉아 듣는 듯 맑고 또렷했다. 읽는 동안 행복했고, 세상일 까맣게 잊을 수 있었던 건 덤이었다.

도산 선생의 강의를 직접 듣고 <별 헤는 밤>의 윤동주 시인과는 평양 숭실중학교에서 동문수학했다는 교수님. “고령인데도 나무처럼 꼿꼿하다. 틀니나 보청기, 지팡이 같은 노년의 그림자는 없었다.”는 글쓴이의 말이다.

지난해 펴낸 <백년을 살아보니>는 10만부가 팔렸다 하고, 이어지는 집필에 계속 강의를 한단다. 일주일에 서너 번이라니 참 노당익장(老當益壯)하다.

김 교수님은 지난 백년, 한 시대를 증언할 수 있는 철학자다. 1920년에 평남 대동에서 출생, 25세에 광복을 맞았지만 환희는 짧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공산주의를 경험하다 월남했고, 30엔 6·25전쟁을, 40대에 4·19의거를 목격했다.

2017년 6월 연희동 단독주택 교수님의 책상 위엔 200자 원고지와 펜, 국어대사전 그리고 돋보기가 놓여 있었다고 한다.

고령에 일하는 데 진력나지 않느냐고, 무례한 질문을 던졌다 한다. 대답에 녹아 있는 노 교수님의 노후가 노란 은행잎처럼 나풀거린다.

“여든 살이 됐을 때 좀 쉬어 봤는데, 노는 게 더 힘들더라. 내게는 일이 인생이다. 남들은 늙어서도 그렇게 바쁜데 행복하냐고 묻지만, 그들이 생각 못하는 행복이 뭔고 하니, 내 일 덕분에 무엇인가 받아들인 상대방이 행복해 하는 걸 보게 된다. 그게 곧 내 행복이다.”그만 말을 잃고, 자신을 추스르기 힘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과 성공을 동전의 양면처럼 생각한다는 것. 그러니까 성공한 사람은 행복하고 행복한 사람은 성공했다고 여긴다. 노 교수의 생각은 사뭇 달랐다.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났다는 것이다.

손녀가 미국에서 MIT(메사추세츠공대) 졸업, 애플에 취직해 무한경쟁 속으로 뛰어들었다고. 하나 성취하면 또 다음 과제가 주어지고, 또 그러고. 안 그러면 밀려나는 세상 아니냐 한다. 성공한 것 같아도 행복하진 않은 것, 끝나지 않은 등산(登山) 같은 거라며.

밖에 나가면 수필 쓰는 교수로 통한단다. 철학과 교수들은 ‘궤도 밖 외도(外道)라 하고. 철학계 삼총사라 불리는 고 안병욱(숭실대)·김태길(서울대) 교수한테도 그랬었다고.

그러면서 요즘 철학에 대한 기대는 낮아도 인문학에 대한 기대는 확대됐다는 게 노 교수님의 깊은 속정이다. “상아탑이 학문의 전부는 아니다. 사람들이 내 책이나 강의에 행복해 하면 그 기운이 나한테 돌아온다. 그러니 출간도 하고 강의도 하게 되고 그러는 것이지.”

미국 사는 딸이 아들·딸·사위 모두 정년퇴직했는데, “아버지 혼자 일하신다.”는 얘기를 들으며 행복하단다. 전엔 아들·딸들이 용돈을 갖다 주었는데 가족이 식사하면 저들이 계산하고. 한데 요즘엔 “(돈 버는) 아버지가 내세요.” 한다며 웃는다.

“이승만 박사가 실패했는데, 소인배와 아첨꾼을 썼기 때문이에요. 박근혜 전 대통령은 편 가르기를 했어요. 내 사람, 같이 일할 사람, 영 아닌 사람으로 나눴고, 아닌 사람은 당 내에서까지 내쳤지요. 그렇게 분열되면 정치 못해요.”

그 연치에 2층 방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린다 하고, 일주일 세 번 수영장에 간다니 정신이 번쩍 든다. 늙는 사람에겐 생활 자체가 운동을 동반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육성이다.

“사람은 성장하는 동안은 늙지 않아요.” 그래서 60분 정도 강연은 서서한단다.

이제 고작 노인청년, 낯이 활활 달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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