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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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애선 당선자

내가 사는 집 앞에 오래된 상점이 하나 있다. 끼익거리면서 잘 열리지도 않는 문을 열며 하루에도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린다. 겉보기엔 별로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상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찾아오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바로 ‘복권방’.


상점은 오전엔 동네 할머니들의 사랑방이다. 그러다 오후가 되면 복권을 사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젊은 사람도 있고 중년들도 있다. 큰 차를 타고 오는 사람도 있고 막노동현장에서 오는지 흙 묻은 작업화를 신고 오는 사람도 있다. 한 가지 공통점은 모두 내 인생 최고의 날을 위해서 복권을 사려한다는 것이다.


이 행운을 좇는 사람들 중엔 내 남편도 있다. 남편의 허름한 지갑 속엔 나도 언젠가 1억의 당첨금을 받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의 종이가 늘 있다. 그렇다고 매주 복권을 사는 것은 아니다. 날짜가 지난 종이도 차마 버리지 못한 듯 거기 있곤 했다.


용돈을 두둑하게 받지 못 하는 남편이 복권을 마음대로 사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유독, 하루의 노동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 퇴근길에 지나치는 복권방은 유혹인 듯 했다. 그 한 장으로 삶의 고단함이 희망으로 바뀐다고나 할까? 단 며칠간의 설렘이지만 남편은 그걸 즐기는 것 같았다.


가끔 밥상머리에서 남편과 이런저런 얘기를 할 때가 있다. 특히 돈 쓸 일이 많은 오월엔 짠내 나는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자식 챙기고 부모님 챙기다 보면 정작 오월 중간쯤에 있는 우리의 결혼기념일은 한 번도 챙길 수가 없었다. 남편 월급 모르는 것도 아니여서 뭘 받아야겠다는 생각도 사실 없다. 그런데도 무슨 심보인지 난 남편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말을 매번 하게 된다.


“내 친구는 결혼 10주년 때 금반지 받았다던데 아~난 10년 넘게 살아봐도 뭐 닮암직한 걸 받아본 적이 없으니….”


그러면 남편은 “복권이나 한 장 살까? 당첨만 되면 그깟 금반기가 대수냐. 금덩어리라도 사주지.”하면서 당장 상점에 갔다오겠다 한다. 정말 갔다 올 것 같은 생각에 아차 싶어 “쓸데없는 소리. 복권 당첨이 그렇게 쉬운 줄 알아? 아는 사람 중에 복권 당첨됐다는 사람 본 적 없네용.”하며 난 얼른 남편의 말을 끊어버린다.


하지만 남편은 나에게서 이런 말을 듣고 나면 복권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해지는 듯 했다. 다음날 혹 빈털터리 지갑을 갖고 다니지는 않나, 몰래 펴보면 행운을 기다리는 복권 한 장이 들어있 곤 했으니까. 언제부터였을까? 복권방 문을 여는 그들처럼 남편에게도 ‘복권’은 ‘행운’의 상징이 되어있는 듯 했다.


그런데 사실 복권보다 ‘행운’하면 누구나 먼저 떠올리게 되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바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네잎클로버 이야기다. 나폴레옹이 전투 중 말을 타고 가다 우연히 잎이 네 개 달린 클로버를 보게 되는데 나폴레옹은 그걸 따기 위해 몸을 숙였다. 그리고 그 순간 너무나 운 좋게도 총알이 그의 머리 위로 날아갔다는 전설같은 이야기.


이 이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렸을 때 나도 수많은 세 잎 클로버 사이에서 네 잎 클로버를 찾아내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네 잎 클로버를 무슨 보물이나 되는 듯이 코팅도 하고 책 사이에 끼워두고도 했었다. 언젠가는 행운이 올 거라는 생각.


아마 남편에게도 나와 같은 순수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삶은 순수하고는 조금씩 멀어져갔다. 짊어져가야 하는 것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삶은 고단하고 막막하다. 딱히 벗어날 길은 없고 그렇다고 놓아버릴 수 도 없다. 이런 상황이 어쩌면 남편에게 복권방의 문을 열게 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떤 사람들은 복권을 얘기할 때, ‘일확천금의 꿈’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난 남편이 가끔씩 사는 복권을 일확천금의 헛된 꿈이라고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현실을 잘 버티고 견뎌나가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남편은 정작 복권을 사놓고도 맞춰보지 않는다고 어느 날 내게 고백했다. 실망할까봐, 라고 덧붙이는 남편이 짠해보였다. 삶의 무게가 그렇게 무거웠냐고 묻고 싶었지만 묻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과연 인생 최고의 날이 오기는 하는 걸까? 1등 당첨 번호 밑에 적혀진 행운을 찾으라는 말, 정말일까? 행운은 멀리 있지 않고 바로 내 집 앞에 있다는 말도 있는데 그 진리가 복권에 있기는 한건지 정말,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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