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처녀 총각이 죽어서 맺는 혼인…슬프고도 아름다운 결합
(72)처녀 총각이 죽어서 맺는 혼인…슬프고도 아름다운 결합
  • 제주신보
  • 승인 2018.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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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치르는 결혼 ‘암창개 의례’
출타한 신랑 소식 없을 때 치러
혼례 전 친상 당했을 때 하기도
사망 남녀 맺어주는 ‘영혼 결혼’
이불 등 혼수 차려 한 곳에 합장
▲ 일본군에 의해 강제 징집돼 청춘에 죽은 이재규 학생 망사비(제주시 구좌읍 소재)의 기록.

▲의례적 인간


우리가 사는 세계는 의례로 둘러싸여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의례를 통해 자신이 규정되거나 사회적 인간으로 재탄생되기도 한다. 의례를 통해서만 인정받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인류학자 캐서린 벨(Cathrine Bell)의 말처럼 “의례는 항상 한 사람이나 공동체의 더 광범위한 의례적 삶 속에 나타나는 많은 의식(儀式) 중 하나이고, 성스럽기도 하고 속되기도 한 여러 제스처 중의 한 제스처이며,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전수되어 내려온 다양한 행위의 전통 들 중 하나를 구체화한 것이다.”


다시 말해 “어느 의례든지 간에 모든 의례에는 사회적 관습과 역사적 관행, 그리고 일상적인 관례라는 두터운 정황이 있기 마련이며, 그러한 것들은 어떤 주어진 시공 속에서 작용하는 독특한 요소들일 뿐만 아니라 어떤 의례적 행위가 거행되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거행되어야 할 것에 대해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다. 전래된 관습들과 실제의 삶의 상황이 각각 날줄과 씨줄이 되어 특정한 의례가 만들어지고 의미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 피륙(皮肉)을 구성하는 것이다.”


의례는 사회적 필요성에 의해 생성되거나 소멸되기도 한다. 그 사회의 가치에 따라 생명이 경시되기도 하지만 존중되기도 한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결혼 


제주에 암창개란 의례가 있다. 일명 혼인이지만 슬픈 혼인이 되겠다.

 

암창개란 암장가 가는 것을 말하는데 신랑 없이 신부 혼자만 혼례를 치르는 어두운, 혹은 우울한 결혼식을 말한다.


혼례를 약속해 놓고 혼례 당일이 되어도 출타했던 신랑이 예정대로 돌아오지 못하거나, 전쟁에 나가서 기약이 없을 때 신랑집에서는 상객들만 신부집으로 가서 신부를 모셔와 치르는 결혼 의례를 말하는 것이다.


또 다른 경우에 치르는 암창개도 있다.


신랑 신부가 약혼한 다음 혼례를 치르기 전에 신랑이 친상(親喪:부모상)을 당했을 때에도 상주로서 근신한다는 뜻으로 암창개가 치러진다.


이때 신랑 신부 예복은 색깔 있는(有色) 옷을 삼가야 한다.


신랑은 가만히 방안에 앉아있으면 상객들만 신부 집으로 가서 신부를 모셔온다.


신부는 신랑 집에 오자마자 상복(喪服)을 입고 배례하고 난 다음 신부상을 받도록 하는데 하객들의 참례나 접객은 보통 잔치 때와 마찬가지로 치른다.


또 슬픈 결혼식으로 ‘죽은 혼소(死婚)’가 있는데 ‘사후혼(死後婚)’이라고도 한다.


바로 영혼 결혼식을 말하는 것이다. 죽은 혼소(死婚)란 결혼할 연령이 되었지만 어떤 이유로 사망한 남녀를 맺어주는 의례를 말한다.


예전에는 총각, 처녀가 죽은 다음 오랜 시일이 지나서 죽은 혼소를 치렀는데 요즘은 사망 직후에라도 죽은 혼소를 치르기도 한다.


이는 살아서는 인연이 없어 못 맺은 혼인, 죽어서라도 좋은 짝을 만나 저승에 가서라도 행복하게 살라는 부모의 가슴 아픈 염원의 상징이다.


부모의 마음을 매우 잘 헤아린 경전 중에 불설대부모은중경(佛說大父母恩重經)이 있다.


거기 아홉째, 자식을 위해 마음 고생하시는 은혜를 보면, “부모님의 은혜는 강산보다 무거우니 진실로 보답하기 어렵네. 자식의 고통도 대신하고자 하시고 자식이 힘들면 어머니는 근심하시네. 멀리 길 떠난다고 하면 돌아다니며 밤에 잠자리 추울까 마음 쓰시네. 자식들이 잠시 괴로움을 겪어도 어머니의 마음은 오랫동안 쓰리네.”라는 부모의 심정으로 미혼에 죽은 자식을 위해 소원이라도 풀어주려는 깊은 사랑의 마음이 죽은 혼소로 표현된 것이다.


죽은 혼소의 순서는 먼저 남자 집안에서 여자 집안에 청혼을 한다.


그래서 여자의 집에서 승낙을 하면 사주를 받아 날을 잡으면 일반 혼례 절차와 같이 약식으로 하고 사돈 의례나 친족‧이웃의 참례도 일반 혼인식과 역시 같다.


잔칫상을 차린 후 그 앞에서 축으로 망자들이 부부가 되었음을 고하면 약식 잔치가 시작되고 이때 친족들은 부모에게 부조로 답례한다.


이로써 남녀 집안은 서로 당사돈 관계가 성립된다. 죽은 혼소라도 이불이나 그릇 등 혼수를 차려오며 따로 있었던 신랑, 신부의 무덤은 이장하여 한 곳에 합장한다. 

 

약관의 나이에 아시아·태평양 전쟁 때 안타깝게 요절한 한 비문은 가슴 아픈 사연을 전한다. 

 

公은 貧困 속에 父母兄弟의 生計을 도웁기 위하여 獻身勞力하시는 中 大東亞戰爭時 日本海軍으로 强制徵集當하여 西紀一九四五年 四月十四日 不幸하게 享年二十三才의 꽃다운 靑春으로 自己뜻을 이루지 못한 채 東支那海倉海의 孤魂으로 散花하였으므로 故鄕땅陽地에 魂을 모시고 一片石으로나마 永遠히 暝福을 祈願하는 바입니다. 西紀 一九七六年 舊二月三日 弟 在吉 子 永男(서기일구칠육년구이월삼일제재길자영남).


이 비문은 부모형제를 도우며 성실하게 살던 제주의 한 청년이 아시아·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일본 해군으로 강제 징집돼 중국 동지나해에서 목숨을 잃은 내용이다.


동생 재길이 비석을 세우고 동생 아들 영남이 양자를 들어 고인의 제사를 모시고 있다.


영혼 결혼의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총각 때 죽은 경우 죽은 혼소의 대상이 된다.

 

▲영혼 결혼의 기원

 

중국에서는 영혼 결혼을 명혼(冥婚)이라고도 한다.

 

결혼 전에 죽는 것을 불행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저승에서라도 반드시 짝을 찾아 줬다.

 

영혼 결혼 풍습의 가장 오래된 기록은 위(魏)나라 때이다.


위나라 무제(武帝)의 아들인 등애왕(鄧哀王) 충(沖)은 어려부터 재능이 뛰어나고 어질고 박학다식했는데 13세 어린 나이로 죽었다.


위나라 무제는 애석하여 아들을 견씨(甄氏)의 죽은 딸에게 장가보내고 합장을 했는데 이것이 후대 영혼 결혼이 시작이다. 서기 212년의 일이다. 당나라 때에 이르면 영혼 결혼이 꽤 성행했다.

 

당나라 위후(韋后)는 동생 순(洵)이 죽자 소지충(蕭至忠)의 일찍 죽은 딸과 영혼 결혼을 시켰다. 송나라에서는 남녀가 장가·시집가기 전에 죽으면, 두 집안에서 중매인을 시켜 짝을 구했는데 그것을 귀매인(鬼媒人)이라고 하였다. 집안끼리 수첩을 만들어 부모의 운명을 기원하고 점쳤다.


점괘를 얻으면 남자의 관(冠)과 허리띠, 여자의 치마와 배자 등의 저승옷을 빠짐없이 갖추어 놓고 중매인이 남자 무덤에 가서 술과 안주를 차려놓고 제사 지낸 후 혼례를 치렀다.


청나라 산우(山右)지방 풍습에서는 남녀가 납채(納采)한 뒤에 요절하면 영혼 결혼의 예를 치렀다.

 

여자가 죽으면 남편 무덤으로 보냈고, 남자가 죽으면 신부의 이름을 바꾸고 요절한 여자를 찾아서 다시 결혼시켰다.


그리고 산기슭에 길한 곳에다 합장시켰다. 이와 같이 영혼 결혼은 면면히 전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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