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의 4·3 7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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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수, 리쓰메이칸대학 국제관계학부 특임교수
재일동포 김시종 시인의 자서전 ‘조선과 일본에서 살다’(아사히신문사가 제정한 산문문학상인 오사라기지로상 수상)에는 4·3 사건 당시 무장봉기에 가담했다가 체포를 피해 일본으로 밀항했던 일, 그 와중에 부모, 인척들의 희생, 도피자로서의 죄책감을 가슴에 새겨 시작한 재일조선인으로서의 삶, 시인을 괴롭힌 총련 조직과의 갈등 등 김시종 시인의 처참한 삶의 궤적이 담겨 있다.

일본, 특히 오사카에는 김시종 시인처럼 당시 살벌했던 제주를 떠나 일본에 건너온 제주인들이 적지 않았다. 당시 일본을 점령했던 GHQ는 일본 입국을 엄격히 금지했기 때문에 제주인들의 도일은 밀항이라는 수단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이 시기 밀항과 관련된 여러 자료에 의하면 4·3을 전후한 시기(1947~1919년)에 대략 5000∼1만명의 제주인이 일본에 건너 온 것으로 추정된다. 그 중 상당 수는 8·15해방과 더불어 한 번 귀국했다가 다시 일본으로 건너온 제주인들이었다. 식민지강점기부터 오사카에는 제주도민의 생활권의 일부라 할 정도로 제주인들의 커뮤니티가 형성돼 있었고, 이는 해방 후에도 밀항자를 받아들이며 계속 유지돼 왔다. 그런 역사적 경위에서 4·3 문제 해결은 재일 동포사회와의 관련을 외면해서는 결코 완결될 수 없는 것이다.

일본에서도 4·3사건을 언급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암묵적인 압력이 지배해 온 한편, 이를 극복하려는 4·3운동도 줄기차게 이어져 왔다.

하지만 4·3사건의 문제 해결을 둘러싼 한국에서의 진전이 일본에서의 4·3운동에 큰 힘을 실어 준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2003년 그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사건 진압과정에서 국가 공권력의 과오를 인정하고 사죄한 것은 재일 동포사회에서 침묵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데 큰 의미가 있었다.

일본에서의 4·3 문제 해결을 생각할 때, 재일 동포사회는 한국 사회와 달리 ‘남’과 ‘북’이 같은 생활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김시종 시인의 경우가 그렇듯이 일본에는 4·3의 무장봉기에 가담하고 ‘공산주의자’로 낙인 찍혀 화를 피해 일본에 건너온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주로 일본 속의 ‘북’이라 할 수 있는 총련계에 속하면서 삶을 유지해 왔다.

이러한 일본 사회의 특성에 비춰 보아, 4·3 70주년을 남북화해의 분위기가 극적으로 고조되는 가운데 맞이할 수 있다는 점은 더없는 행운이라 하겠다.

4·3 70주년을 앞두고 오사카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지난 11~12일)를 시작으로 제주에서 열릴 70주년 추모식에 일본에서 200명 넘는 방문단이 참가하는 등 일본에서의 70주년 사업은 전례 없는 규모와 다양성을 자랑하는 사업이 될 것이다.

또한 70주년 행사의 일환으로 오사카에서 치러지는 위령제에는 민단과 총련 임원들이 함께 이름을 올렸고. 제주 방문단에는 오랫동안 한국 입국이 어려웠던 ‘조선국적’ 동포들도 참가하게 됐다.

그런 점에서 일본에서의 4·3 70주년 기념행사는 촛불혁명이 열어놓은 새로운 환경 속에서 남북화해의 뜻을 담은 행사가 될 것이다. 일본뿐만 아니라 올해 4·3 70주년 모든 행사가 참다운 화해와 상생을 이룩하는 데 시금석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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