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공항 봄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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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원, 한국공항공사 제주지역본부장

항공기는 대양을 가르는 배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흔적이 많다. 지구촌 구석구석을 누비는 ‘항해’라는 동일한 개념을 가졌기 때문이다.

사용하는 단위 역시 많이 공유하는데, 다른 분야에서는 생소한 ‘노트(Knot)’라는 속도 단위가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매듭’이라는 뜻을 가진 ‘노트’라는 단어가 왜 속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대항해 시대를 다룬 최고의 영화로 손꼽히는 ‘마스터 앤 커맨더’를 보면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항해 중에 한 선원이 여러 매듭이 묶인 밧줄을 바다로 던지고 모래시계를 뒤집어 시간을 잰다. 이윽고 때가 되자 풀린 밧줄의 매듭수를 확인하며 12노트라고 외치는 장면이 그것이다.

정확하게 1노트는 1시간에 1해리를 움직인 속도다. 바다 위 거리를 나타내는 1해리는 1852m로, 북극과 남극을 잇는 선(자오선)을 360도로 나누고 1도를 60등분한 값이다.

공항에서는 바람의 속도 단위로 ‘노트’를 사용한다. 그래서 공항 직원들에게 이 단위는 매우 익숙한데, 부는 바람을 매일 온몸으로 체득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 정도면 10노트쯤 되겠구나. 그럼 운항에는 문제가 없겠구나’ 이런 식이다.

그럼 항공기는 어느 정도 바람세기까지 운항할 수 있을까? 항공사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측풍 기준으로 약 30노트, 어림잡아 시속 60㎞까지 이착륙이 가능하다.

통계를 보면 항공기 운항을 가장 어렵게 하는 기상은 바람이다. 지난 2013년부터 5년간 전국 공항의 기상으로 인한 결항 원인을 보면 강풍이 46.5%, 안개와 강설이 23.7%와 22.2%다. 항공기는 바람의 덕을 누리지만 때론 그 바람 탓에 발이 묶인다고 할까.

삼다도의 제주공항은 어떨까? 같은 기간 강풍 53.4%, 강설 30.3%, 안개 11.5%로 역시 바람의 영향이 평균보다 높다.

그런데 강설로 분류되는 결항 사례를 제주공항 현장 날씨와 비교해 보면 강풍의 영향은 이보다도 훨씬 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강설이 몰아치는 활주로에 서보면 바람의 위력을 금세 실감할 수 있다. 실제 대규모 결항이 발생한 2016년 1월 23일부터 3일간 16.1㎝의 기록적 폭설 당시 최대 51노트(95.4㎞/h)의 강풍과 저시정, 윈드시어 경보가 모두 발효된 상황이었고, 지난 1월 11일에는 적설량이 5㎝였지만 최대 38노트(70㎞/h)의 강풍과 윈드시어가 동반됐다. 바로 제주 해안 특유의 강한 돌풍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항공기는 생각하는 것만큼 쉽게 결항되지 않는다. 그러나 운항조건을 넘나드는 강풍이 지속되면 안전 운항을 최우선으로 하는 항공기 결항은 불가피하다. 성난 자연을 거스를 수 없다면, 안전한 여행을 위해 한 호흡을 참아야 하는 상황은 야속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음력 2월 영등할망이 몰고 오는 봄바람은 변덕이 심해 초록을 온 들녘에 뿌리다가도 금세 비바람으로 돌변해 종종 항공기 운항에 훼방을 놓는다. 따뜻한 봄이 왔지만 제주공항 종사자들이 시시각각 변하는 봄바람을 예의 주시하며 항공기 안전운항에 모든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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