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혼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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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선 수필가

시도 때도 없이 온몸을 급습하는 통증으로 약을 복용한지 2년이 되어가던 날이었다. 의사는 처방마다 부작용을 겪는 나에게 더 이상의 약을 쓸 수 없다며 통증을 전달하는 신경계를 잘라 내는 뇌수술을 권했다.

 

두려움에 선뜻 답을 하지 못한 채 병원을 나서는데, 가슴에서 휑~하는 바람소리가 들렸다. 본디 몸의 모든 기관은 그만한 이유가 있어 제 자리에 놓였을 것인데, 그것을 잘라 낸다는 것은 또 다른 부작용을 부르는 일이지 싶어 수술이란 단어를 애써 외면했다.

 

그리고 찾은 요가. 남들처럼 해 낼 수 있는 몸이 아니기에 우아한 동작까지는 미리 포기했다. 요가 선생은 내 몸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나서 개별지도를 해주었는데, 할 수 있는 만큼의 동작에서 멈추게 하고 잠시 깊은 호흡을 유도하였다.

 

작은 불빛이 어둠을 밝히듯 희미하게나마 치유의 가능성을 붙들 수 있을 것 같은 어느 날이었다. 호흡에 집중하며 에너지를 보내고 있는데 마음속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이 통증이 어디서 왔다고 생각해?” 누군가가 내안에 있는가 싶어 섬뜩했다. 그 후로 드물지 않게 그 소리를 들었다. 산책을 할 때나 요가 동작 중에 불쑥 찾아오는 내면의 소리, 깊은 밤 잠들지 못하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마음의 시선, 무심한 눈길로 주시하는 모습이 나를 긴장시키곤 했다.

 

어느 날부터 정신을 가다듬고 들리는 내 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드디어 또렷한 목소리를 들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너는 나에게 귀 기울이지 않았어. 나를 봐 달라고 호소하며 수 없이 네 잠긴 문을 두드렸지만, 철벽처럼 문은 열리지 않았어. 내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해 너의 몸에 통증으로 호소했을 때조차도 너는 몸만을 위해 동분서주했을 뿐, 나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했어. 네가 느끼는 고통을 육체적인 문제라고만 생각했어?.”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이제야 지난 시간들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아홉 살 때, 호기심에 알을 깨고 꺼낸 병아리는 미숙아였다. 절뚝거리며 가짜 엄마인 나를 따라다니다 나의 뒷걸음질에 밟혀 다리가 부러져 죽고 말았다. 호박잎으로 싼 병아리를 땅에 묻으며 가슴이 찢기듯 아팠지만 네가 상처받는 줄을 몰랐다.

 

아직 영글지 못한 나이에 7남매를 둔 가난한 집안의 맏며느리가 되었을 때, 친정 부모님의 도움도 뿌리치고, 내 힘으로 가난을 헤쳐 나가겠노라며 두 세 사람 몫을 할 때도 너에게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링거수액을 맞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웠던 그 시절, 몸만 힘든 줄 알았지 네가 아프다는 걸 나는 까맣게 몰랐다. 아, 그 어리석음 이라니!

 

2년에 한 번 자리바꿈을 해야 하는 직장에서 25년 넘게 근무했는데, 유독 나만 17년을 한 곳에서 일하다 보니 창살 없는 감옥이 따로 없었다. 완벽을 바라는 그들의 요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얼마나 사력을 다했던가. 결국 에너지가 소진되어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자 휴직서를 내던지고 제주도로 피신을 왔었다. 그게 나를 살리려는 너의 결단이었음을 알지 못한 채….

 

어디 그 뿐이었을까. 내 삶의 수많은 과오 속에서도 나는 너를 보는 눈이 없었고, 너를 듣는 가슴도 없었다. 내가 깨닫지 못한 그 오랜 세월 동안 너는 안타까워하며 애절한 시선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는데…. 내 속 어딘가에 또 하나의 내가 살고 있다는 것을 나는 모르고 살아왔다. 네가 나의 진정한 나인 것을. 요가 동작에 몰입해서 호흡이 길어지면 가슴과 몸이 열리며 눈에선 어느새 눈물이 고인다. 회의 그물들을 뚫고 나와 저 무한한 우주 속 어느 광원을 내닫는 영혼의 비상을 체험하며 비로소 너와 하나가 된다. 그 희열을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머잖아 내 몸의 통증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리라.

 

다행스럽게도 나는 요즘 들어 나를 지상에 잉태시킨 위대한 창조의 손길이 부여한 나의 영혼과 대화를 나누며 사니까. 바람이 분다. 오늘도 내 영혼을 깨워 그가 이끄는 곳으로 산책을 나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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