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만에 재개된 4·3 희생자 유해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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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부터 제주국제공항에서 4·3 행방불명인 유해발굴이 시행된다. 1차 사업(2007~2009년)을 마무리한 후 9년 만이다.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럽다. 유족들은 비행기가 오르내릴 때마다 가슴이 찢어진다고 한다.

현 공항 활주로(정뜨르비행장)는 4·3사건의 진상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곳이다.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1949년 10월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가 내려진 249명과 6·25전쟁 직후 제주시 북부지역(제주읍·애월면·조천면) 예비검속자 중 행방불명인 351명, 삼면(서귀·중문·남원) 예비검속자 200여 명, 제주시 화북동 일부 주민, 국방경비대 9연대 장병 일부 등 최소 800명에서 최대 1000명 내외가 이곳에서 집단 총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차 사업에서는 유해 382구가 발굴됐다. 당시 현장을 지켜본 유족들에 따르면 별로 크지도 않은 구덩이에 259구가 있었다고 했다. “뼈들이 서로 엉켜있고 유해 위로 겹겹이 또 다른 유해들이 쌓여 있었다”라고 했다. 총살 후 시신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짐작게 하는 부분이다. 한 유족은 그냥 막 죽이고 구덩이에 쓸어 담고, 또 죽이고 그 위에 쓸어 담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번 2차 발굴은 어떤 성과를 낼지 알 수 없다. 매장지로 추정되는 5곳 가운데 항공기 운항으로 동서 활주로 서북쪽 등 2곳은 발굴 대상에서 제외됐다. 더욱이 1차 발굴에서는 예비검속 북부지역 희생자의 유해 1구도 나오지 않았다. 그 때문에 또 다른 장소에서 학살됐거나 수장됐을 개연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래도 몇 %의 가능성만 있더라도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 지난 70년의 아픔을 딛고 새로운 70년을 열어가기 위해서라도 과거 정부 때처럼 중단하거나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 특히 공항 확장 과정에서 상당수 유해가 옮겨졌다는 증언도 있다. 이번 발굴 결과에 따라 증언에 대한 사실조사도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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