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코리올라누스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코리올라누스
  • 제주신보
  • 승인 2018.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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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창. 신학박사/서초교회 목사

셰익스피어의 비극 중에 ‘코리올라누스’라는 작품이 있다. 2011년에 영국에서 같은 이름으로 영화가 만들어졌는데 그 역시 셰익스피어의 원작에 근거한 것이다.

코리올라누스는 고대 로마의 전설적인 장군의 이름이다. 국가를 위해 용감하게 싸워 공을 세운 후에 로마 군중의 열광 속에 그는 집정관에 오를 예정이었다. 그런데 군중들의 함성을 통해 얻는 명예나 권력에 대해 그는 부정적이었다. 명예는 고귀한 신념과 행동의 결과로 얻어져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현명치 못하고 때로는 무책임한 군중들의 함성이 명예와 권력을 만들어주는 것이라면 그런 명예는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SNS의 함성이 국가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듯한 우리 시대엔 어울리기 어려운 인물인 셈이다.

코리올라누스에게는 전쟁터에서 살아남기에 급급한 평민 대중을 존중하거나 그들의 의견을 따를 생각이 없었다. 그런 다수의 의견이나 함성을 따라서 자신이 믿는 바를 수정할 생각도 없었다. 그런 군중들에 의해 명예에 만들어진다면 그런 명예는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가 생각했던 국가와 명예는 대중적 여론이 외치던 국가와 명예와는 다른 것이었다.

그와는 반대편에서, 군중의 함성과 여론 전문가였던 로마의 호민관들은 대중과 여론을 재주껏 활용하여 코리올라누스를 추방해 권력을 잡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코리올라누스는 국가를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전쟁터를 전전했는데, 그 국가 구성원들의 함성은 영웅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말았다. 대중 여론과 다른 방향을 바라보던 영웅은 비극의 결말을 맞이하고 말았다. 재치있는 화술로 군중을 다루는 귀족과 대중 여론 전문가들이 합세해 고귀한 신념과 행동을 몰아낸 것이 코리올라누스라는 작품의 줄거리였다고 기억된다.

크고 작은 사건들은 많은데 고귀한 신념이나 인물이 잘 안보이는 것은 그 시대나 우리 시대나 비슷하다. 고귀한 신념이나 행동은 역사 무대의 중심을 차지하기 어렵고 중심을 차지해도 오래 버티기가 어렵다. 그 대신에 SNS의 클릭과 함성을 받아들인 것이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의 현대인들이 아닌가 생각된다.

대중적 결정에 문제가 있다 해도 민주주의는 대중과 여론을 존중해야 한다. 시시때때로 잘못된 결정을 할지라도 최종 결정은 대중에게 맡겨져 있다. 대중 여론의 전문가가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대중 영합의 기술이나 여론의 활용은 갈수록 기술적이 돼 가는데 흔들림 없는 고귀한 신념과 행동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마음속으로는 군중을 무시하면서도 재치 있는 화법으로 군중을 다루는 귀족들이 있었다. 대중적 여론을 활용 조작하면서 권력을 행사하던 대중 영합 전문가들이 로마의 현실 권력이기도 했다. 그런 두 종류의 사람들만이 만들어가는 세상을 부담스러워 했던 것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고귀한 신념’과 ‘대중적 여론’ 사이 관계와 만남이 필요하다는 설득을 하려고 했을까?

‘놀라운 융합과 속도의 제4차 산업혁명’과 ‘고귀한 신념의 코리올라누스’는 무척이나 안 어울린다. 안 어울리는 그만큼 서로에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우리 시대의 좌파 우파가 그런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