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뱀 신앙’은 생계선을 지키려던 인간적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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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석이 쥔 도구·동물…무속신앙과 연관
제주서 신으로 숭배된 ‘뱀’…여러 상징 내포
남녀뿐 아니라 죽음과 파괴의 신도 될 수 있어
▲ 뱀을 들고 있는 동자석의 모습.

제주의 산담이 둥근 봉분을 원으로, 네모난 산담을 땅으로 인식한 중국 고대의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우주설을 담고 있다.

 

조선시대 유교의 도입 이후 제주 산담은 성리학적 질서와 민간신앙의 혼재된 영계(靈界)의 습합 장소로서 제주 문화의 대표적인 축조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문화 상징은 그 땅의 정신세계를 드러낸다. 정확히 말해 그 땅과 연관된 삶의 구조로서의 믿음을 반영하는 데 홀을 들고 있는 것은 유교를, 십자가를 들고 있는 동자석은 기독교를, 연꽃을 들고 있는 것은 불교를, 신칼을 들고 있는 석상은 무속을 말하는 것이다.

 

뱀과 새를 들고 있는 동자석 또한 무속적 이유이다. 제주의 산담이 15세기 이후 유교의 영향 아래 만들어지기는 했으나 동자석에서 알 수 있듯이 무속의 습속이 여전히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유교 도입 이전의 제주인의 정신세계는 원시적 토착 신앙이 지배했고 그 이후로도 계속 유교와 공존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뱀을 들고 있는 동자석


이 동자석은 원래 선흘리 알바매기 오름 북녘 밭 가운데에 있는 무덤에 있었던 동자석이었는데 도굴되었다가 2004년 오설록 뮤지엄 정원에서 찾아왔다.


이 동자석이 만들어진 시기는 비석에 ‘昭和 18년 改竪’라고 하여 1943년에 동자석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른손에는 울쇠를 들고, 왼손으로 뱀을 들고 있는 이 주술적인 동자석은 첫눈에도 무속신앙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뱀과 관련된 신화로는 ‘칠성본풀이’가 있으며, 민간신앙으로는 ‘칠성눌’이 있다.

 

이 동자석은 지표상 노출된 길이가 64cm이며, 넓이 27cm, 두께 24cm으로 현무암으로 만들었으며 음각선으로 댕기머리를 표현했고, 전체 형태는 얼굴은 뱅돌락한데 눈매가 올라갔다.

 

가슴이 패이고 몸통은 각주형이다.


반대편 석상은 왼손에 신칼을 들고 오른손에 까마귀로 보이는 새가 종이를 물고 있다.

 

무속의 동물과 무구를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영계(靈界), 즉 저승과 관련이 있다.


무속에서 칠성은 북두칠성으로, 죽음을 관장하는 별이고 까마귀는 염라대왕의 심부름꾼으로 저승 갈 명부(冥簿)를 들고 이승으로 날아오는 새이다.


도상해석학으로 보면, 이 무덤의 묘주는 무당 아니면 그런 집안의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까마귀와 관련된 신화로는 ‘차사본풀이’가 있으며, 여기에서 까마귀는 염라대왕 심부름꾼으로 이승에 내려가 다음 사망자 이름을 부르는 역할을 하고 있다.  


문화사적으로 매우 귀한 이 동자석은 제주도 무속 신앙의 원형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특히 뱀 신앙이 제주도 전역에 분포돼 있었던 만큼 과거 제주인의 생사관까지도 엿볼 수 있다.


뱀과 관련된 유물로는 상여와 비석, 그리고 밧칠성으로 쓰던 칠성돌이 전해온다.  


▲뱀에 대한 서양의 문화적 인식


뱀은 특정 문명권의 상징적 의식을 반영한다.


서양 기독교 문명권에서는 뱀은 간교한 지혜를 가진 유혹자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머리카락이 살아있는 뱀들로 꿈틀거리는 메두사는 여자들의 변덕스러운 마음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는 남자의 마음을 상징한다. 


뱀의 상징은 매우 다의적(多義的)이다. 죽음과 파괴의 신도 될 수가 있으며, 남성도 여성도 될 수 있고, 자기 창조(단성생식)도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주기적으로 허물을 벗기 때문에 생명과 부활을 상징하며 영적 재생과 육체적 재생을 상징하기도 한다.

 

뱀은 남근의 상징이며, 남성적 창조력, 즉 모든 여성들의 남편이고, 뱀의 모습은 보편적으로 수정·수태와 연관성을 갖고 있다. 뱀이 모든 여신과 태모(太母)의 상징이며, 도상(圖像)으로는 여신에 몸에 감겨 있거나 신의 손에 뱀을 들고 있다. 이 경우 뱀은 비밀, 모순, 직관이라는 여성적인 특질을 지닌다.


지하에 사는 뱀은 명계(冥界)와 접촉하며 죽은 자가 가지는 모든 힘이나 마력을 사용할 수 있다.

 

지하세계에 속하는 뱀은 그 세계와 암흑의 신들의 공격적인 힘을 나타낸다.

 

또 지하의 뱀은 암흑으로 인도하는 인도자, 회춘을 가져 오는 자, 대지의 ‘내장의 지배자’로 군림하면서 태양에 속하는 모든 영적 대상의 적대자로 인간 가운데 어둠의 힘을 나타내기 때문에 태양과 뱀의 싸움은 빛과 어둠의 갈등, 긍정과 부정적 힘의 대결로 나타난다.


또 뱀은 원초적인 본능, 즉 다스려지지 못하는 미분화한 생명력이 용출(湧出)을 의미하며 잠재적인 활력, 영적(靈的) 활성력을 상징한다. 


두 마리가 함께 있는 뱀은 궁극적으로는 통일을 지향하는 이원적 대립을 상징하는데, 나무나 지팡이에 감겨 있는 두 마리의 뱀은 자연의 나선 순환, 하지(夏至)와 동지(冬至), 기본적인 힘으로서 말리는 힘과 풀어지는 힘, 연금술의 용해와 응고를 상징한다.

 

‘헤르메스 지팡이’로 불리는 뱀의 지팡이(Caduceus)는 치유와 독, 질병과 건강, 자연을 정복하는 자연으로서 동종요법적(同種療法的)으로 대립하는 힘을 나타낸다.


서로 상대방을 휘감고 있는 두 마리의 뱀은 두 개의 커다란 속박과 힘인 시간과 운명을 상징한다.

 

▲ 뱀신을 모시는 주제기와 밧칠성. 옛 제주인들은 뱀을 신으로 숭배했다.

▲제주의 뱀 신앙

 

뱀을 신앙의 대상으로 설정하는 것은 뱀의 생태계 역할과 습성과 관련이 깊다.


뱀은 쥐로부터 곡식을 보호하니 농경신이 되고, 길면서 껍질을 벗는 이유로 인해 사람들이 오래 살거나 환생한다고 믿기 때문에 수명장수(壽命長壽)와 관련이 깊다.


세계사적인 차원에서 조망해 보면, 농촌 사회에서 기근이 1년에 한 차례 이상 찾아올 확률은 45%나 되었다. 생계를 위협할 심각한 기근의 발생 확률도 30% 이상이나 되었다.

 

또한 농산물 작황에 따른 계절적 기근이 주기적으로 찾아오면서 농민들은 연중행사처럼 크고 작은 기근에 노출되었다.


조선사회의 경우, 보리 추수를 앞둔 5~6월에 닥치는 ‘보릿고개’와 좁쌀 추수를 앞둔 9~10월의 기근이 그 경우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농민들은 이런 위험, 즉 생계를 위협하는 한계선 근처에서 생존을 모색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민중들의 삶의 목표는 ‘생계선’ 아래로 추락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으로, 신앙이 발달하는 것은 생계선을 지키려는 인간적 노력 때문이다.


제주에서는 뱀을 여성신으로 인격화하여 뒷할망, 물할망, 칠성할망, 안칠성할망, 밧칠성할망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또 ‘칠성’, ‘칠성한집’, ‘칠성부군’이라고 부르는 것 또한 수명과 연관된 북두칠성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문전신은 조왕할망과 가족이므로 무속을 신앙하는 집안에서는 칠성신앙과 함께 여성 중심의 대표적인 의례가 되고 있다.


유교식 제사를 하더라도 꼭 문전제를 먼저 치르고, 조왕할망 상을 마련하거나 고팡의 칠성신인 안칠성에게 제사의 제물을 바친다.


민속학자 진성기 선생은 “제주도 뱀신의 유입은 중국, 한반도, 그리고 남양 등지의 여러 방면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섬이라는 지정학적 특성으로 보면 바다는 폐쇄적이기도 하지만 문화전파론 입장에서 보면 언제나 사방으로 열려있는 광장 역할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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