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의 눈물…제주의 4월을 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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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옛 구억국민학교(下)
1948년 4월 28일 평화회담이 결렬되자 남의 집 쇠막에서 생활
역사적 공간 기억하기 위해 70년 만에 표석 세우고 동백나무 심어
▲ 바람난장 식구들은 4·3 70주년을 맞아 지난 17일 4·28 회담이 이뤄진 서귀포시 대정읍 구억리 옛 구억국민학교 주변 ‘구억제주옹기배움터’에서 음악연주와 시낭송 퍼포먼스를 벌이고 표석을 세웠다.

제주섬, 동백꽃 지다

 

변종태

 

어머니는 뒤뜰의 동백나무를 잘라버렸습니다
젊은 나이에 댕겅 죽어버린 아버지 생각에
동백꽃보다 붉은 눈물 흘리며
계절은 빠르게 봄을 횡단하는데,
끊임없이 꽃을 떨구는 동백,
붉은 눈물 떨구는 어머니, 동백꽃
목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먼 산 이마가 아직 허연데,
망나니의 칼끝에 떨어지는 목숨,
꼭 그 빛으로 떨어져 내리던,
붉은 눈물, 붉은 슬픔을
봄이었습니다. 분명히
떨어진 동백 위로
더 붉은 동백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심장 위로 덜커덕,
쓰린 바람이 훑고 지나갑니다.
먼저 떨어진 동백꽃 위로
더 붉은 동백이 몸을 날렸습니다.
봄이었구요,
아직도 한라산 자락에 잔설이 남은 4월이었구요.

 

▲ 4·3 당시 11살이었던 강영화씨가 4·28 회담이 열렸던 날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강동완 구억리장이 난장팀을 반갑게 맞는다. 그는 “예로부터 구억리는 노랑굴, 검은굴 등 가마터가 있어 도요지로 널리 알려진 마을이다. 하지만 아직도 4·3의 아픔이 치유되지 않은 마을”이라고 소개했다.

 

구억국민학교가 ‘4·28평화회담’ 장소였다는 목격자의 증언이 있었다. 4·3 당시 구억국민학교 학생이었다는 강영화(80세)씨는 “11살 때 지프차를 탄 군인 두 명이 학교로 들어가는 것을 숨어서 다 봤다. 그 당시 구억국민학교에는 산에서 온 사람들이 깃발 네 개를 가지로 신호를 주고받았다. 노랑개(군인)가 출발했다는 신호로 청색 깃발, 회담 장소 가까이 이르렀다고 황색 깃발을 흔드는 것도 봤다. 몇 시간이 지나 회담이 성사되자 밖에서 기다리던 사람들도 환호성을 울렸다. 그러나 사흘 후 오라리 방화사건이 나자 회담은 결렬되었고, 구억리 사람들은 인성, 보성, 안성 등 해안마을로 소개되어 남의 집 쇠막에서 쪼그려 잠을 자기도 했다”고 한다.

 

강영지 노인회장은 ‘4·28 평화회담’ 관련해서 표석 세우는 것을 언론인이나 정치인들이 나서야 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탁상공론만 하고 있다. 이런 역사적인 공간이 구억리에 있는데 관심조차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번 바람난장에는 연극인 정민자·강상훈 부부가 시극 낭독 첫 선을 보였다. 김경훈 시인의 ‘한라산-구억국민학교에서의 회고’편이다. 이들 부부는 김익렬 국방경비대 9연대장과 인민유격대 사령관 김달삼 역을 맡아 ‘4·28 평화회담’ 그때 당시 상황을 실감나게 연출했다.

 

다음은 시낭송 차례다. 이정아, 이혜정, 김정희 시낭송가가 변종태 시인의 ‘제주섬, 동백꽃 지다’를 릴레이 낭송 했다. 광목천을 펼쳐놓고 ‘떨어진 동백 위로/더 붉은 동백’이 몸을 날리듯 꽃을 흩뿌리는 낭송가들. ‘젊은 나이에 댕겅 죽어버린 아버지 생각에/꽃보다 더 붉은 눈물을 흘린다’는 대목에서 낭송가도 우리도 울컥 목이 메인다. 이 퍼포먼스를 위해 꽃을 주우러 선흘 동백동산까지 다녀왔단다. 저들의 열정이 곧 프로 근성임을 일깨워주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예술나무심기’ 순서다. 옛 구억국민학교 터엔 이미 아파트가 들어서 있어서, 이 아파트 큰길 쪽 화단에 기증 받은 50년생 동백나무를 심었다. 그 곁에 준비한 표석도 세웠다. 이 표석 하나 세우는데 70년이 걸렸다. 표석엔 바람난장 회원들의 마음을 모아 아래와 같은 글을 새겼다.

 

 

‘이 장소는 1948년 ‘4·3’이 발발하자 김익렬
국방경비대 9연대장과 김달삼 인민유격대
 사령관이 ‘4·28’평화회담을 했던 곳이다.
 「문화패 바람난장」은 이를 기억하고자
  동백나무를 심고 이 표석을 놓는다.’
       2018년 3월 17일
   ‘바람난장 - 예술이 흐르는 길‘

 

- 글 문순자
- 그림 홍진숙
- 동영상 고대환
- 사진 채명섭
- 시낭송 김정희와 시놀이(김정희 이정아·이혜정)
- 시극 낭독 정민자·강상훈
- 음악감독 이상철

 

*다음 바람난장은 3월 31일(토요일) 오전 11시, 신엄리 김석희 번역가 자택에서 펼쳐집니다.

 

*‘예술나무심기 프로젝트’에 도민 여러분들의 후원과 참여를 기다립니다.
예술나무심기는 문화예술의 향기를 전도에 퍼뜨리고, 무분별한 개발로 훼손된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바람난장이 마련한 프로젝트입니다. 제주의 환경과 생태가 안정화되는 날까지 나무심기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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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부 2018-04-11 19:57:09
3.3 70주년, 참으로 뜻 깊은 행사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