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4·3 역사화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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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은자, 이중섭미술관 학예연구사

요즘 동백꽃이 제주 4·3을 상징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제주 4·3을 추념하기 위해 옷깃에 한 송이 동백꽃 배지를 달고 다닌다. 동백꽃은 꽃잎이 하나씩 떨어지는 여느 꽃과는 달리 한 겨울에 피었다가 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릴 때쯤 어느 한 순간에 꽃송이가 통째로 땅에 떨어진다. 땅 위에 떨어진 동백꽃은 처연하면서도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묘한 아름다움과 연민을 느끼게 한다.

제주 무속에서 동백꽃은 환생 꽃으로 관념되고 있는데, 어느 화가는 제주 4·3 역사화에서 수많은 희생자의 최후의 모습을 땅에 떨어진 붉은 동백꽃으로 표현하여 제주 4·3의 처참했던 상황을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런 이유로 붉은 동백꽃은 제주 4·3의 상징 꽃이 되었다.

역사화는 역사상의 사건을 주제로 한 그림이다. 넓은 의미에서는 신화나 전설에서 취재한 사건을 그린 것도 포함되며 작가와 동시대의 사건을 그린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역사화로 잘 알려진 작품으로는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있다.

스페인 내란 중 파시스트 독재자인 프랑코 총통은 1937년 4월 26일, 나치 독일의 폭격기를 지원받아 스페인 북부의 작은 도시 게르니카를 무차별 폭격했다. 이 폭격으로 무고한 시민 2000여 명이 죽고 마을은 초토화됐다.

당시 피카소는 스페인 공화국으로부터 파리 만국박람회에 내보낼 벽화 제작을 의뢰받은 상태였다. 파리에서 작품을 구상 중이던 피카소는 자신의 조국에서 일어난 폭격 소식을 듣고 몹시 분노했다. 피카소가 격분한 것은 무차별 폭격으로 인해 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기 때문이다.

피카소는 폭격이 있은 후 일주일도 되기 전에 스케치를 시작해 한 달여 만에 세로 349㎝, 가로 775㎝에 이르는 대형 작품 <게르니카>를 완성했다. 검은색과 회색조의 무채색을 사용해 사람과 동물이 폭격 당하는 장면의 특징만을 살려 단순한 선으로 전쟁의 참혹함을 표현했다.

<게르니카>가 알려지면서 전 세계 사람들은 분노했고 참혹한 학살을 저지른 프랑코 총통을 비난했다. “그림이란 집안을 장식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적을 공격하고 방어하는 전쟁무기도 될 수 있다.”는 피카소의 말은 이후 미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하여 숙고하게 만들었다.

1947년 3·1절 발포사건과 1948년 무장봉기로 촉발됐던 제주 4·3은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3만여 명의 인명 피해를 가져왔다고 전해진다. 가옥 4만여 채가 소실되었고 중산간지역의 많은 마을이 폐허로 변했다. 가슴 아픈 세월이 흘렀다.

올해로 제주 4·3은 70주년을 맞이했다. 지난 시간은 제주 4·3을 말하기도 힘든 암흑기였던 만큼 제주 4·3 관련 그림들도 매우 어둡고 우울하고 슬프게 표현됐다. 당시로서는 제주 4·3이 무엇인지를 알려야 했기 때문에 기록적이고 고발적인 그림들이 주를 이루었다. 지금은 상생을 위한 새로운 제주 4·3 역사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라에서부터 흐드러진 벚꽃 사이를 지나 봄은 한반도를 향해간다. 제주 4·3의 슬픈 진혼의 노래를 넘어 동백꽃이 4·3을 상징하듯 이 땅에서부터 인권과 평화가 온 누리로 퍼져나가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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