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라는 섬
‘그래도’라는 섬
  • 제주신보
  • 승인 2018.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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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허자, 광주대각사 주지/제주퇴허자명상원장

문득 작년 연말에 제주 한라마을 작은도서관에서 제주끽다거 용심론 앵콜 특강과 함께 차려졌던 송년모임이 생각난다. 강의 제목은 ‘인생의 보람된 삶, 어떻게 살 것인가?’였다. 인생이란 과연 뭘까? 송년회의 무드가 함께 깔린 자리인지라 악기 연주도 있고 시와 노래도 있고 곡차(막걸리)도 있는 자리여서 아무리 스님의 강의라지만 사람들의 눈빛이 재미를 요구하고 있었다.

이런 때는 강사로서 노련한 내공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청중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 인생이 뭘까요?” 이 경우 강사의 입장에서는 어떤 답이 나와도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강사는 이 질문의 답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강의 분위기 고조를 위해 누군가 청중 속에서 좀 거들어주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주로 침묵을 좋아한다. 참으로 눈치도 없는 사람들만 모인 것 같다. 그러나 내가 누구인가?

수 십 년을 법문과 강의로 밥을 먹고 살아온 터이다. “인생이 뭐냐?”고 38년간을 호떡장사를 해온 어떤 노 보살에게 물어봤더니 스님이 그것도 모르냐면서 ‘인생은 호떡이야’라고 말했다. 바로 그렇다. 나는 순간 인생본무답(人生本無答)이란 말이 떠올랐다. 이는 인생은 본래 답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답이 무진장으로 많다는 역설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장 콕토(Jean Cocteau)는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그냥 살지요.’라고 말했지만 나는 이 말에 동의할 수가 없다. 결코 인생은 대충 살아서는 안 된다. 반드시 삶을 디자인하고 살아야 보람이 있다. 그냥 사는 것은 목수가 설계도 없이 집을 짓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인생은 반드시 다음 칸이 있는 법, 바닥을 쳤다고 망하지 않는다. 바닥은 망하는 자리가 아니라 처음 시작했던 자리이므로 다시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중단하거나 포기하지 말라. 그 중단과 포기점이 바로 내가 시작해야 할 점이다. 이것이 내가 평소 용심론에서 말하는 바닥이론이다.

오늘 나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보람이 있는지 정답을 드릴 수는 없다. 힌트만 드릴 뿐이다. 정답은 각자가 스스로 깨닫고 찾아내야 하는 것이니까. 나는 사르트르를 27살에 만났다. 그가 말하기를 ‘인생은 B(탄생: Birth)에서 D(죽음: Death)에 이르기까지 C(선택: Choice)이다.’ 라는 멋진 말을 했다. 나는 오랜 동안 이 말을 격언처럼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 그런데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였다. 왜냐하면 선택이 잘 못되었거나 선택한 일이 작심삼일(作心三日)이면 결과는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C(선택: choice)를 C(도전: Challenge)로 바꿨다. 인생은 선택이 아니라 도전이며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라는 말처럼 신념만 확고하면 자신의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나오는 기적이 생긴다. 이것이 도전정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도 참 자주 쓰는 말이다. 이 말은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지 않고 스스로 몫을 감당한다는 뜻이다. 이 말을 줄이면 ‘그래도’가 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섬은 제주도이다. 그런데 이 제주도보다 몇 천 만 배나 되는 섬이 있다. 바로 ‘그래도’라는 섬이다. 이 섬을 꼭 한 번 가보기 바란다. 보람된 인생은 어쩌면 ‘그래도’에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