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은 간다
3월은 간다
  • 제주신보
  • 승인 2018.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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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선 수필가

3월의 제주는 생동으로 아름답다. 잔설殘雪이 남아있는 한라산 자락마다 봄기운이 자욱하다. 1층 앞 화단에는 개나리 꽃나무 무리가 경쟁이라도 하듯 빨간 꽃망울을 터뜨려 눈을 즐겁게 해준다. 거리를 거닐면 연분홍의 벚꽃이 가로수 소공원 아니면 집 울타리 안에 만개해 완연한 봄이 지구촌을 감싼다.
추위와 삶의 무게로 움추렸던 사람들도, 모처럼 차려 입고 상춘나들이에 나선다. 가벼운 발걸음과 환한 얼굴들 여느 봄꽃들 못지않게 곱고 화사하다. 아름답고 한가로운 이른 봄의 풍경이 시야를 즐겁게 해 준다.

 
춘삼월 호시절을 맞이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하순에 접어든다. 꽃샘추위도 예년보다 줄어들고 따사로운 봄 날씨가 더 많아진다. 경칩 춘분도 지나고 이제 완연한 봄이 전국에 깔린다. 월말이 되면 남쪽나라 제주에서 벚꽃이 만발하기 시작헤 육지부로 북상한다고 한다. 3월말부터 3일간의 벚꽃축제는 관광객과 도민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준다고 벌써부터 신문방송의 매스컴이 PR에 열중이다. 저절로 여심旅心을 부추겨 집을 뛰쳐나가고픈 유혹에 빠진다.

 

2년 전 평소 같은 3월의 봄을 맞이했었더라면, 자그마한 여행 가방을 굴리며 혼자 아니면 지인과 함께 부산과 서울을 맴돌았을 것이다. 자녀와 조카들도 만나고 명소를 관광하면서 겨우내 쌓아온 고독감, 우울증 같은 짐을 훌훌 털어버리고 되돌아왔을 것이다. 5월 말 아니면 6월 초 문학 동아리에 합류하여 매년 계속하던 2박 3일의 문학기행도 지난해부터 중단하고 만다.
이날로부터 모든 삶의 과정이 헝클어져 버린다. 내 인생 최후의 보금자리로 도사려 앉아 10여 년 살아온 제주시 연동아파트 한 칸 집을 비워 장기 입원생활로 들어간다. 오진으로 판정된 병환을 그대로 믿어 하룻밤만이라도 잠자리에 들어가기라도 했었더라면 그날로 지구소풍은 끝내버렸을 것이다.

 

이제 와서 이 글을 쓰며, 2년 전 3월 14일에 발생한 병환의 과정을 돌이켜 보니 오싹 겁이 난다. 한번 접으면 두 번 다시 회생하지 못하는 인간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조물주가 내게 재발케 한 병은 그런대로 이제 착지에 머물러 안정기에 들어섰다고 나름대로 간주해본다. 좀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가며 얼마의 여생을 더 살다 오라는 메시지를 나의 인생에 보내줬을 것이다.
이제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아 욕심부려온 비품, 돈 비우기에 주력하며 얻어 모았던 것을 하나둘 증여하고, 버리며 육신이 가벼워지는 몸종이 되어야 함을 최근 들어 절실히 느끼고 실천에 옮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뻔뻔스럽게 장단 맞추는 사람도 있지만, 숫자가 많아지면 그렇게 만은 아니 된다. 건강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원하지 않는 병환이 어떡해서라도 찾아온다. 건강이 최고라고, 건강하지 않으면 명에도, 권력도, 재산도, 모두 2선, 3선으로 물러가야 함을 병을 얻어 경험해서야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생로병사의 길로 매듭 지워가는 대자연 삼라만상의 법칙을 이해하게 된다.
병환을 얻어도 살아있는 한 병환을 치료하여 쾌유를 바라며 발버둥치는 것은 인간 공통의 행태이다. 4개월 여 입원생활에서 많은 동병의 환자들을 보아왔고 섞여 재활치료도 받아왔다. 3월이 막 가는 오늘도 많은 환자로 병원은 만원이 되어 투병 생활에 열중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따사로운 봄이 싸늘해지는 감이다. 현재 건강하신 여러분들은 병환을 멀리하여 장수하는 말년 인생이 되어주기를 빈다.

 

오늘도 장애인 걸음으로 외래진료를 가고 온다. 2년이 지나가도 호전의 징후는 거의 안 보인다. 그래도 새봄에 접어든 3월이 가고 벚꽃이 만발하는 화창한 봄날이 계속되면 저린 손 팔이 풀어지고 장애인 걸음도 좋아질 기적이 생길 것을 꿈꾸며 오늘을 난다.
병환을 얻은 모든 환자분의 쾌유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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