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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늘 둘이다. 현재도 하나가 아닌 그냥 둘이다. 올해 3.1절에도 우리는 역시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

날씨마저 쌀쌀했던 2003년 3월 1일, 서울시청 광장에서는 자유총연맹, 한국기독교신도연맹,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애국청년단 등 100여 단체 수만여 명의 회원이 ‘3.1절 국민대회’를 열고 있었다.

같은 날, 서울 탑골공원과 워커힐호텔 등에서도 여중생범대위, 전쟁반대 평화실현 공동실천, 남.북 종교인 등 250여 개 단체 수천여 명의 회원이 ‘3.1 민족대회’, ‘촛불 대행진’ 등을 진행하고 있었다.

구경꾼들은 전자(前者)를 보수진영, 후자(後者)를 진보진영이라 부르고 있다.

보수진영의 행사장에는 대형 태극기와 성조기, 유엔기가 게양되어 있었다. 그리고 ‘한-미 공조’, ‘좌익 박멸’, ‘반핵-김정일 타도’를 외쳤다.

진보진영의 행사장은 또 달랐다. 그들은 ‘살인미군 처벌’, ‘외세 배격’, ‘미군 철수’ 등을 주장했으며, 성조기를 불태우기도 했다.

함께 치러야 할 3.1절 행사를 다른 생각을 가진 국민끼리 따로 치른 것이다. 이런 현상은 1946년 좌.우익이 대립되던 시절에도 있었다. 한 쪽은 서울운동장에서, 다른 쪽은 남산공원에서 3.1절 행사를 치르면서 충돌까지 빚었었다.

서울에서 뿐이 아니었다. 전국 곳곳에서 좌.우익이 따로 3.1절 행사를 하면서 불상사를 일으켰던 것이 해방 공간의 이 나라 사정이었다. 그러다보니 조국은 분단되었고, 6.25한국전쟁도 일어났다. 하나가 아니라 둘이 된 탓이다.

둘인 것은 3.1절 때만이 아니다. 대북송금 특검법 통과 때도 야당은 본회의장 안에 있었고, 여당은 밖에 있었다. 역시 국회도 둘이었다.

국민들의 마음도 둘이다. 어느 정권에서든 각료 인선이 있을 때면 경상도 몇 명, 전라도 몇 명, 어느 지방 몇 명하고 출신지별 숫자 세기에 익숙해졌다. 각종 선거 때도 둘로 갈라서고 나면 하나로 다시 돌아 오지 않는 게 우리 현실이다.

북핵을 둘러싼 작금의 한반도 위기는 결코 우리가 둘이어서는 안될 상황이다. 양쪽으로 나뉘어 토론을 하고 논쟁도 벌이되 하나로 돌아와야 한다. 무질서에서 질서를 찾는 것, 둘이 되었다가 다시 하나로 돌아오는 것, 이것이 민주주의 아닌가. 설사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되 국민은 하나여야 한다. 특히 정치인들은 휴전 이후의 아주 작은 평화에 분별을 잃어서는 안 된다. 지금 이 나라는 아주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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