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억울한 영혼이여…몸이 없어도 돌아와 편히 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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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무속에서 사후 영혼은 셋으로
저승, 혼백상, 신체로 갈 거라 믿어
추석 등 명절에만 인간 세계로 나와
영혼을 저승에 편히 모시는 ‘질침굿’
제명 못 살고 이승 떠도는 원혼 달래
4·3 사건 당시 정방폭포에서 학살된 임문숙 일가의 헛묘. 이 묘지는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육거리 동쪽에 조성됐다.
4·3 사건 당시 정방폭포에서 학살된 임문숙 일가의 헛묘. 이 묘지는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육거리 동쪽에 조성됐다.

▲만물의 변화가 귀신


우리 조상들은 사람이 죽으면 혼백(魂魄)으로 나누어 혼(魂)은 하늘로 올라가고 백(魄)은 땅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든 존재는 주역(周易)에서 말한 바처럼, “정기(精氣)가 어리어 사물이 되고 죽은 후에 그 혼백(魂魄)이 흩어져 무형(無形)이 된다”고 하는데 즉, 이는 우주에 존재하는 생명 에너지의 취산(聚散:모이고 흩어짐)으로 인간과 사물의 생멸(生滅)을 말하는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반드시 흙으로 돌아가서 귀신이 된다. 귀신이란 영적인 존재이다. 주희는 귀신을 말해, “신(神)은 펼치는 것이고, 귀(鬼)는 움츠리는 것이다. 예컨대 바람·비·천둥·번개 등이 막 발생할 때는 신이고, 바람이 그치고 비가 지나가며 천둥이 멈추고 번개가 쉬는 것은 귀이다.”라고 했다.


이런 자연계의 유와 무를 오가는 현상, 즉 현상에서 본체로, 본체에서 현상으로 변해가는 과정 하나하나가 다 귀신이라고 한다(김현·2011).


성호 이익도 ‘귀신혼백(鬼神魂魄)’이라는 글에서, “무릇 천지 사이에 가득 찬 것은 기(氣) 아님이 없다. 그러나 그 융결하여 사물(物)이 된 것은 곧 기의 정영(精英)이다. 백(魄)이란 음(陰)이니, 음으로서 형(形)을 이루어 형과 질(質)이 이미 생기면 백도 또한 그 가운데 있는 것이다. 양(陽)이란 음에서 나오기 때문에 이미 백이 있다면 바로 혼(魂)이 있는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혼은 하늘로 가고 백은 땅으로 간다.” 귀신을 기의 작용에 의한 응결된 물체로 보고 그 물체 속(육신)에 혼이 생겨난다고 본 것이다. 


제주도 무속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셋이 있다고 믿는다. 한 영혼은 명왕(염라대왕)이 있는 저승에 가게 되고 다른 영혼은 뼈난 골 즉, 무덤 속 신체로 가고, 또 한 영혼은 혼백상(魂魄床)에 붙었다가 3년 상이 넘고 담제(禫祭)가 지나면 하늘 위로 올라가 구름으로 떠서 구름길로 동서로 떠다닌다고 한다.


이런 영혼이 인간 세계에 나오는 날은 총 다섯 번 저승문이 열리고 자손 집으로 온다고 한다.


이 다섯 번은 정월 명절, 한식날, 단오날, 8월 추석, 생진일(제사날)이다. 소위 공식적인 날 이외에 귀신이 아는 체하게 되면 산사람이 괴롭다고 한다. “요날 이외랑은 자손가지(각 자손들)에 인사하지 맙서, 놈(남) 본 냥 모른 체허여줍서. 귀신은 반가 왕(반가워서) 알은 체허민, 생사름(산사람)은 괴로운(아프거나 함) 법이우다(진성기, 2004). 죽은 영혼이 산사람과 가깝게 되면 이승보다는 저승이 가깝게 되기 때문에 공식적인 날 외에는 가까이하지 말라는 동티(터부)가 있다. 

 

▲억울한 영혼을 위한 질치기


질치기는 제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질침굿의 제차이다.

 

질침굿이란 돌아간 영혼을 저승의 명왕길(염라대왕)까지 잘 인도하기 위한 굿이다. 대개 젊은 때 액(厄)으로 죽은 억울한 영혼이나 이런저런 이유로 제명에 죽지 못한 원혼들은 이승에서 죽산이로 헤매게 된다.


그러므로 원혼을 저승으로 편하게 모시기 위해서 질침굿을 하는 것이다. 이 질침굿 제차 중에 신을 모셔들이는 ‘산굿(서서 하는 굿)’ 제차가 있는데 그때 멍석을 깔고 대나무 가지를 구부려 반원 모양으로 저승다리를 상징하여 대개 3줄로 열두 군문을 세운다.


심방은 그 사이를 제차마다 맞는 행위를 하며 다리 사이를 돌아다닌다. 이 저승 다리는 말 그대로 저승으로 가는 길인데 거기에는 한 영혼마다 두 종류의 다리를 놓는다. 곧 악심다리와 영계다리가 그것이다. 


심방은 이 세운 댓가지(다리의 상징)를 돌아보면서, 그 길이 거칠면 닦아야 하는데, “자왈이 있으면 그것을 비어 넘기고(잘라서 지나고), 따비로 길을 닦고, 산태(들 것)로 나르고, 괭이로 고르고, 먼지가 있으면 물을 뿌리고, 젖은 곳 마른 곳은 보리낭(보리짚)으로 깔아서 저승길을 닦는다. (…) 한 영혼에 영계다리와 악심다리라는 두 다리를 놓는데 악심다리 밑에는 무명 한 필을 가지고 대문(마루문)에서 올레까지 깔아놓는다. 영계다리 위에 깐 무명 한 필로 혼을 부르고 영계 앞에 내던진다.


그 무명으로 죽산이 모양의 시신을 만들고 열두 토막으로 묶고는 그 시신의 가슴에 점구인 산판 두 개를 품게 하고 다시 시신의 옷 속에 동심결을 만들어 집어 놓는다.


이 가상의 시신은 억울한 원혼이 입었던 옷으로 싸고는 굿을 주재하는 심방과 굿을 의뢰한 본주가 나란히 어깨에 메고 방으로 들어가 병풍 앞에 놓는다. 그리고 그 영전에 영가루라는 하얀 가루를 올리게 하고 그 원혼이 무엇으로 환생될 것인가를 점치게 된다.


영가루를 체로 쳐 큰 쟁반에 올려두면 어떤 흔적이 나타난다고 하는데 나비의 모양, 새의 발자국, 뱀의 모양, 소의 발자국 등이다.


이 모양을 보고 심방이 해당 영혼이 무엇으로 환생되는지 알 수가 있고 죄가 풀리면 새가 돼 날아간다는 의미로 영가루에 새 발자국이 찍힌다고 한다.


그러나 영혼의 죄가 깊으면 뱀의 모양이나 소 발자국이 영가루에 찍힌다고 한다.


또 영혼을 잘 보내는 제차로 지전이나 돈, 다라니로 저승다리 위에 인정을 건다. 질침굿 제차는 며칠씩 하는데 매우 복잡하다. 이 굿 후반기인 ‘체소본 풀음’을 보면, 상주에 해당하는 본주는 질치기 하는 영혼이 생시에 입었던 옷을 전부 상위에 모아 개어놓고, 다리를 놓았던 무명에 띠로 만든 인형(草人)의 시신을 만들어 생전의 옷을 입히고, 옷고름, 허리띠, 신발에 이르기까지 실제 시신을 갖추어 장사지내듯 하게 된다. “저승 염라대왕광과 같이 신체 체백으로 돌아갑서”(진성기·2004).

 

▲4·3 희생자의 ‘헛묘’

헛묘는 4·3 사건 때 희생된 임씨 가족 9명의 묘로, 시신을 못 찾아 봉분 7기를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육거리 동쪽에 조성한 것이다.

 

헛묘의 봉분은 유교식이나 헛묘의 의례는 분명 무속식이다. 유교에서는 시신 없이 봉분을 만들지는 않는다.


유교에서의 반혼(返魂)은 반드시 시신을 가지고 돌아와야 무덤을 만들 수 있다. 제주에서 유교식으로 반혼한 사례는 육지에서 벼슬하다 임지(任地)에서 사망한 경우에 고향으로 시신을 가지고 돌아와 모신 경우가 많다.


그러나 행방불명 된 억울한 영혼의 혼을 위로하고 정상적으로 자신의 체백이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것은 제주 문화의 특수한 상황이 낳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제주는 지정학적으로 바다가 접한 섬이어서 해상사고가 빈번하다 보니 행방불명자가 많다. 이렇듯 시신을 찾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영혼을 기리는 형식은 두 가지가 있는데 망사비(望思碑)와 헛묘이다.


망사비는 구천을 허매는 영혼을 위로하고 언젠가는 혼이라도 돌아오기를 바라는 의미이다. 헛묘도 유교의 이념이 짙은 것이 있다.


좋은 묘자리를 미리 봐두고 거기에 마치 진짜 무덤처럼 헛봉분을 조성하여 나중에 자신의 조상을 다시 묻는다. 이는 풍수지리에 의한 구산(求山)을 탐하는 경우이다.


4·3 희생자의 헛묘는 역사의 광풍에 희생된 억울한 영혼을 편히 돌아와 쉬게 한다는 점에서 유교의 헛봉분과는 다르다.


현재 제주의 헛묘 중 임문숙 가의 헛묘가 외형적으로 유교식 무덤으로 조성됐으나 내용적으로는 학살터에서 혼을 불러와 모신 무속식 의례가 습합되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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