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천 만세동산을 보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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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조천 사람 앉았던 자리엔 풀도 안 난다.’ 사람 앉았던 데 풀이 안 난다니, 이를테면 지역성으로 주민들이 매우 강하고 야무지다는 말로 들린다. 그런 성향이 어느 수위를 넘는다는 상징성을 지닐 테다.

실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근원을 찾아봤다. 일제강점기 때 개성과 함께 일제(日製) 불매운동을 벌였던 조천의 지역적 기질은 대단한 것이다. 아직도 항간에 이 말이 회자되고 있는 걸 보면 여사한 마을이 아닌 게 틀림없다.

그에 더한 게 있다. 일본에 항거한 기미독립운동의 확산 기류를 타고 제주에서도 만세를 부르며 포효했다. 그곳이 조천이고,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곳이 바로 조천 만세동산이다. 열네 분 애국지사의 주도로 결행한 이 운동은 그때 수백, 수천의 주민으로 퍼져 갔고, 그들 애국지사들은 체포돼 혹독한 옥고 끝에 순국했다.

만세동산은 항일정신이 살아 숨 쉬는 진원으로 제주도 ‘3·1의 맥(脈)’이다. 선열을 추모하고 그 행적을 기리기 위해 만세를 불렀던 동산에 기미독립운동기념탑을, 경역의 한복판에 애국선열추모탑을 올리고 제주항일기념관을 건립했다. 이들을 한 울타리에 모아 이곳이 기미독립운동의 성역화공원으로 자리 잡았다.

만세동산은 그냥 동산이 아니다. 명실 공히 제주 독립운동의 거점으로 제주인의 항일정신을 고스란히 펼쳐 놓은 성지(聖地)다.

항일기념관에는 선조들의 독립정신을 담고 있는 유물들, 일제에 항거하던 사진·기록물·연표들이 전시돼 있다. 선열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담긴 다양한 조형물, 설명 패널, 영상 모니터, 벽면 부조 같은 입체적 전시로 어린 아이들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어 역사 교육의 장으로 그 활용도가 높다.

만세동산은 면적이 5만8582㎡(1만7000평)로 매우 광활하다. 초등학교 운동장의 18배에 해당할 것이다.

한데 찾아갈 때마다 허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넓은 땅에 동선 따라 후피향나무를 줄 세우고, 주변에 소나무 팽나무 동백나무 돈나무 구실잣밤나무 등을 심어 작은 숲을 만들어 놓았다. 동쪽에 쉼터로 정자가 둘 서 있고 띄엄띄엄 벤치가 놓여 있지만, 단조로운 디자인이다.

일제에 항거해 독립만세로 파장을 불렀던 곳인데, 몇 군데 나라꽃 무궁화 군락이 들어서야 하는 것 아닐까. 이왕 줄 선 후피향나무이니, 그 안쪽으로 무궁화를 겹겹이 심어 수형을 가꿔도 좋을 것인데…. 빈 공간이 허해 휑하다. 대부분의 터가 경작지로 문전옥답이었다. 공원에 꽃도 없다. 귀한 땅이 버려지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잔디밭 여기저기 벤치도 놓고 운동기구를 설치해 주민들이 찾는 생활공간이 됐으면 오죽 좋으랴.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잔디를 야금야금 잠식하며 기세등등한 잡풀들이다. 민들레 망초는 그렇다 치고 클로버와 새[띠, 茅] 무리는 세상만난 듯 창궐해 이대로 두면 살아남을 잔디가 없을 지경이다.

철철이 예초기로 웃자란 걸 깎고 있지만,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바랭이 같은 모진 잡풀은 약발이 먹히지 않으면 호미로 뿌리째 뽑는 게 상책이다. 요즘엔 너덧씩 방석 깔고 앉아 잡풀 뽑던 인부들도 안 보인다.

만세동산의 격을 살리기 위해 좀 더 고민해야 한다. 성역화 공원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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