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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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수 논설위원

“미국은 하루하루가 선거일이다.” 한 선거 컨설턴트가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정치와 정책이 춤추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한 말이다. 그만큼 미국은 여론조사에 극성스럽다.

여론조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갤럽여론조사’를 세계에 보급시킨 조지 갤럽(1901~1984)이다. 아이오와주립대 신문인 ‘데일리 아이오언’의 편집장 시절 그가 처음으로 한 여론조사는 ‘누가 대학에서 최고의 미인인가’이다. 그는 이 조사에서 1등으로 뽑힌 여학생과 24세에 결혼했다.

그의 실력을 선거운동에 처음 적용한 이는 공교롭게도 장모인 올라 바브콕 밀러다. 밀러는 아이오와주 부지사 후보로 출마한 후 당선 가능성이 떨어지자 당시 대학교수이며 광고회사 임원인 사위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밀러는 여론조사 결과를 선거운동에 활용함으로써 무난히 당선할 수 있었다.

▲갤럽이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된 것은 1936년 미국 대선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승리를 예측하면서이다. 당시만 해도 여론조사의 선두주자는 ‘리터러디 다이제스트’라는 주간지였다. 갤럽의 예측대로 루스벨트가 재선에 성공하자, 갤럽은 여론조사의 혁명을 이끈 영웅으로 떠오른 반면, 한때 100만부 이상 나가던 이 주간지는 충격을 견디지 못한 나머지 다음 해에 폐간했다.

물론 갤럽에게도 실패는 있었다. 1948년 대선에선 해리 트루먼의 승리를 예측하지 못해 조롱거리가 됐다. 하지만 그는 이 대선을 제외하면, 그 이후 1980년대까지 11차례 대통령 선거 결과를 정확히 예측했다.

갤럽의 여론조사 적중에는 유권자들의 솔직함이 크게 기여했다. 여론조사를 할 때마다 그들은 “내 생각을 묻는다고, 내 생각이 중요하다고, 지금까지는 그 누구도 내 생각을 물어본 적이 없었는데…”라고 감탄하며 호의적으로 응했다.

▲ 6·13지방선거에 출마하는 제주도지사 후보 대진표가 거의 확정됐다. 이제부터 민심을 읽는 여론조사도 불을 뿜을 것이다. 여론조사는 비교적 생산원가가 싸게 먹히면서도 여론몰이의 파괴력은 실로 대단하다. 소위 가성비(가격 대비 효능)가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모두 그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지금부터는 피가 마르는 하루하루를 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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