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용미지절·토신제 없는 장법…지금은 제주서 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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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일 등 나쁘면 ‘토롱’ 장법 이용
시신 부패 막으려 관을 밖에 둬  
명정에 이불 덮고 짚·조찍 등 둘러
장례일에 매장…‘가매장’의 일종
광에다 입관하는 모습. 이러한 정식 장례 절차와는 다르게, 토롱은 시신을 임시로 두었다가 장례 기일이 되야 매장을 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광에다 입관하는 모습. 이러한 정식 장례 절차와는 다르게, 토롱은 시신을 임시로 두었다가 장례 기일이 되야 매장을 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인생은 천장지구(天長地久) 속 티끌

 

사람들이 이 땅에서 왔다가는 시간은 잠시 천장지구(天長地久:하늘과 땅은 영원함) 우주의 시간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발의 피다.

 

그래서 기억하기를 희망하고 그것을 기록하려는 지도 모른다. 사람이 죽음은 필연적인 사실이다.


그러나 자신이 마지막을 알 수도 없고 마음대로 조정할 수도 없다. 우리는 그래서 목숨은 천명(天命)에 있다고 하는 것이다.

 

제주의 장례와 관련된 속담에 “죽젱 하여도 체시가 와사 혼다(죽으려 해도 차사가 와야 한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는 말이다.

 

이 ‘때’란 한 치도 틀림이 없는 운명의 순간인 것이다. 이 순간은 우리가 생각하지는 못하고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우연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어느새 필연적인 결과에 이른 것이고, 이것이 바로 때에 다다랐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죽음은 체험도 할 수 없고, 경험도 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실존의 비밀이다.

 

이 세상에서 한 명도 죽어본 사람이 없고, 죽었다 깨어났다고 하면 그것은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닌 잠시 기절했던 상태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죽음은 아닌 것이다.


태어나는 것도 한 번이요, 죽는 것도 한 번 뿐인 우리 존재의 비밀은 그저 시간 속에서 체백(體魄)의 변화에 따라 그렇게 변해갈 뿐이 아닌가.


그래서 사람들은 태어났다고 하여 기뻐하고 잔치하고, 죽었다고 하면서 슬퍼하면서 장례를 치른다.

 

상·장례는 죽음의 슬픔을 덜기 위한 인간의 마지막 배려이다. 인생의 아쉬움은 가까운 사람들과의 숱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고 슬픔의 빛이 더 짙은 것도 그 기억들을 잊는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공포이기 때문이다.

 

▲토롱, 지금은 사라진 장법


망자의 택일이 좋지 않거나 상주가 먼 곳 있어서 기일 내 도착하지 못할 때, 또는 명절이 다가와 부정(不淨) 때문에 동네 사람들이 일을 도울 수 없어 택일이 길어지는 때 등의 이유로 가매장(假埋葬) 장법이 있다.


제주도에서는 이를 토롱(土壟)이라고 한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제주도 마을마다 토롱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필자의 할머니도 1981년 1월 15일 대정읍 하모리 상동에서 돌아가셨는데 장례 기일이 5일장(葬)이 돼 토롱을 했다.


당시 필자의 집에서 토롱지까지는 약 300m 정도 떨어진 ‘기상’이라는 곳이었는데 그곳의 친척 밭에 가매장을 한 적이 있다.


토롱을 하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장례일이 길어지면 시신이 부패하기 때문에 밖에다 관을 두는 것이다.


당시 필자의 나이는 21살로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토롱의 순서는 복친(服親:가까운 친척)들만 가서 정해진 밭에 임시 매장할 장소를 마련하고 광(壙:관 구덩이)을 판다. 적당히 구덩이를 파고 관이 바닥에 닫지 않도록 나무를 밑에 받친다.


다음으로 관 위에 명정을 놓고 홑이불을 덮는다. 다시 위에 개판을 대강 놓고 그 위로 보리낭-새, 짚, 조찍 등을 상황에 따라 관 둘레에 두르고는 노람지를 두르고 주제기(모자 모양의 띠 덮게)를 씌운다.


또 바람에 들리지 않도록 집줄을 돌아가며 돌려놓고는 노람지 부분 부분에 생솔가지를 덮기도 하면서 그 사이로 흙을 조금씩 씌워 쥐나 새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마감한다.


영장날이 되면, 상여를 토롱 장소에서 짜고 발인제를 지낸 다음, 관을 상여에 올려 메고는 마을을 한 바퀴 돈 후 모슬봉까지 약 1.6㎞ 거리에 있는 장지로 향했다.


상여를 매고 갈 때는 상여에 매단 작은 종소리가 부딪쳐 울고 노랫말 없는 상두꾼들의 음으로만 부르는 슬픈 장송의 소리가 바람결에 날리면서 마지막 이승의 길을 아쉬워했다.   

      
서귀포시 토평 마을인 경우 토롱 하는 이유를 보면, 먼저 장래 택일의 문제로 상주의 참여 수, 막은 절기, 상주의 운을 들고 있다.


그리고 홍수나, 폭설 등 천재지변인 경우, 명당이나 묏자리를 고르지 못한 택일의 문제, 전염병이나 난리에 의한 운상(運喪) 문제, 맏상주가 출타하여 없는 주상(主喪)의 부재, 혼사나 상주가 없는 집안의 사정, 포제, 명절 등의 관습의 문제를 들고 있다.


정리하면 대체로 보통 첫 택일을 해서 안장(安葬) 하기 어려워 시간이 걸리면 토롱을 하는데 상주가 많으면 택일도 쉽지 않고, 까다로운 집안에서는 산터와 잘 어울리게 택일을 하게 되면 더 어렵다.


택일은 산터에 따라서 장사를 해서는 안 되는 날이 있고, 또 원래의 날, 일반적으로 사·해(巳亥)된 날이다.


돼지(亥)날은 장사를 지내지 않는다. 그때 장사를 지내면 계속 집안에 상이 난다고 한다.


뱀날에는 뱀이 왕성할 때이기 때문에 그날 “영장을 하게 되면 구더기가 인다” 고도 하고, 돼지날은 가만히 있는 뱀을 건드려 왕성하게 발동하게 만들기 때문에 장례를 안 한다고 하고, 그래서 사일(巳日), 해일(亥日)은 피한다.


토롱은 흔히 남해안의 초분(草墳) 같기도 하지만, 초분처럼 2차 장인 세골장(洗骨葬)이 아니라, 시신을 임시 두었다가 장례 기일이 되면 정식 장례인 장지에서 매장을 한다는 점에서 가매장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토롱은 용미지절(龍尾除節)은 내지 않고 토신제도 지내지 않으며 막은 방위만 피한다.

 

▲전염병과 특수한 장법


전염병이나 특이한 병으로 죽은 사람은 염습을 하지 않기 때문에 관을 사용하지 않는다.


시신을 눕힐 수 있을 만큼 크기로 대나무로 발을 엮어서 싸고 머리와 발끝 부분에 솔잎을 넣어서 사망자의 집 근처에 염소(殮所)를 차린다. 이때 염소는 돌담을 쌓은 뒤 시신을 놓고 소나무 가지로 덮고 이엉을 두르고 새나 짚으로 엮은 주제기를 씌워두었다가 시간이 흘러 전염병이 사라진 뒤에 정식으로 장례를 치른다.


전염병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부인이 출산하다가 사망한 경우 분만을 못하고 죽은 경우 가매장해 두었다가 5~6년 뒤에 그 태아를 모체에서 분리하여 정식 장례를 치른다.


또 출타했다가 사망한 경우에는 그 시신을 집안에 두지 못하고 집 가까이 야외에 장막을 치고 빈소를 삼아 장례를 준비한다.


만일 망자가 너무 젊어 안타까운 나머지 상주가 꼭 그 시신을 집안에 들여놓고 싶으면 자연스럽게 “어딜 갔다 늦었느냐? 어서 식사해라!”라고 하여 평소처럼 말을 한 후 시신 앞에 먼저 식사를 차려놓고 난 다음에 집안으로 맞아들인다.


또 서귀포시 대정읍의 한 사례인데 동네 한 남자가 바다에 빠져 죽자 잠녀들의 도와주어 며칠 동안 바다를 뒤져 시신을 찾아오자 망자(亡者)의 친족 한 분이 시신을 향해 “술 먹어, 술 먹어”하고 말을 한 후 뭍에서 야외 빈소로 시신을 옮겼다(양신하 증언·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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