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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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언, 시인·수필가

사람들은 불완전하고 나약한 존재임을 깨달을 때 절대자를 찾는다. 그분을 통해 진리를 얻고 삶의 고난을 헤쳐 나간다. 그러나 그분은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며 지식보다는 믿음의 문을 노크하기에 초대 여부는 사람마다 다르다.

나는 타인의 실수로 한쪽 눈을 다치고 나서 성당에 처음으로 발을 놓았다. 병원에서 퇴원하던 날 길가에서 장님과 조우했고, 묘하게도 실명의 아픔을 위로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느꼈다. 우연을 필연으로 해석하는 순간이었다.

가톨릭교회의 기본 가르침은 간명하다.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하고 자기 자신처럼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전제 앞에 이르러 나는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저는 그렇게 못 삽니다.’하며 달아나기 일쑤였다.

이렇다 보니 세례 받은 지 30년을 넘어섰지만 많은 날들이 냉담 생활로 흘러갔다. 기적처럼 해결되기를 바라는 현실 문제들은 요지부동이었고 주일 미사마저 생활의 걸림돌처럼 느낄 때가 있었으니 신심이 자랄 수 있었겠는가. 신앙의 반항아는 늘 마음을 삭막하게 만들었고 그럴수록 생활의 늪은 깊어만 갔다. 어느 순간 절망의 벽을 향해 울부짖었더니 기도의 싹을 키워 주셨다.

기도에는 응답이 따른다. 응답이 없다면 내용이 잘못되었거나 해석할 능력이 부족한 데 기인할 것이다.

어디서 읽은 일화 한 토막이 가물거린다. 한 장년이 눈 내린 산길에서 호랑이를 만나자 무릎을 꿇고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를 했다. ‘호랑이에게 잡아먹히지 않도록 저를 구해 주십시오.’ 그때 호랑이도 하느님께 기도를 했다. ‘배고픈 시간에 식사거리를 주시어 정말로 감사합니다.’ 결국 호랑이의 기도가 효험을 보았다고 한다. 무엇을 간구해야 할지를 곱씹게 한다.

요즘 나의 기도에는 은총이 따른다. 마음의 평화뿐만 아니라 가끔 뜨거운 눈물을 주신다. 더 큰 축복은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는 것이다. 진지한 자세로 영혼을 담지 못하고 편하게 푸념하더라도 위로의 숨결을 주시니 이런 사랑이 또 있을까.

지난달 화북성당 ‘평화의 모후’ 쁘레시디움 단원 7명이 1000차 주회를 기념하며 2박 3일 동안 피정을 다녀왔다. 활동한 지 몇 년 안 된 나는 왠지 설레었다. 가톨릭목포성지의 레지오 마리애 기념관과 부산 예수성심전교수녀회에서 숙박을 하며 어떻게 하면 성화(聖化)를 통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을지 교육 받고 묵상하였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귀국하라는 말을 아랑곳하지 않고 산정동 성당을 지키던 서방 선교회 소속 신부 세 분이 공산군에 끌려가 대전에서 순교했다는 사실과 예수성심을 전하려는 수녀님들의 맑은 생활은 마음 깊숙이 자리하여 나를 다독일 것이다.

신앙은 생활의 일부가 아니라 우주라는 신앙의 바탕 속에서 삶이 전개된다고 자각한다면 보다 행복하고 가치 있는 나날을 이어 가지 않을까.

남북과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다는 소식이다. 진정성 있는 해법으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의 초석이 세워지기를 기원한다. 간절한 기도는 이루어진다 했으니, 많은 사람들의 기도의 인연으로 좋은 결실이 맺어지기를 빌며 두 손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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