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그들의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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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유교문화권에서 오랫동안 체면을 중시해 온 한국인들은 남에게 업신여김 당하는 걸 못 참는다. 모멸감에 민감한 유전자가 있다. 또 우리 사회가 많이 변했다. 엄격한 반상(班常) 구분의 신분사회가 자본주의로 넘어가면서 과거보다 더 쉽게 모멸감을 주고받는 환경 요인과 만나게 된다는 분석도 설득력이 있다.

갑질이 사라지지 않는다. 돈과 권력을 동일시하는 데서 일어나는 갑질 행태가 끊이질 않는다. 일부 재벌의 비뚤어진 우월의식이 문제다. 갑질은 저들의 고질적 사고에 연유한다.

2014년 12월의 땅콩리턴. 대한항공 오너 일가 조현아 전 부사장이 이륙 준비 중인 기내에서 땅콩 제공 서비스를 문제 삼아 난동을 부린 데다, 비행기를 되돌려 수석 승무원을 하기시킨 사건이다. 출발이 20분가량 늦어지고 연착되면서 승객들이 큰 불편을 겪어야 했다. 비행기가 회장 딸 개인의 전유물이 아님은 명백한 상식이다.

기억을 소환할 것도 없다. 4년도 안됐는데 그들 일가가 또다시 갑질 논란에 휩싸였다. 이번엔 전무 조현민이 언니 뒤를 이었다. 광고 대행업체 직원들과 회의 중이었다 한다. 조 전무가 광고대행사 팀장에게 대한항공 영국 편 광고 캠페인에 대한 질문을 던졌고, 답변을 잘하지 못하자 물 컵을 바닥에 냅다 던졌다는 것. 회의장에 물벼락이 떨어졌다. 갑질이 이 지경이다.

이게 알려지면서 폭로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대기업 전무라는 막강한 지위를 이용해 갑질을 일삼았다는 것이다. 함께 근무했던 이들에 따르면, 그의 도덕성 문제가 낯을 찌푸리게 한다. 연장자에게 폭언하거나 반말하는 등 어처구니없는 것들이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그래서 회사를 떠난 이들도 있다는 주장이다. 대행사 사원이 명함을 건네자, “사원 나부랭이가 무슨 명함을 줘.”라며 내던졌다 한다. 그에겐 위아래, 경우도 없는가. 한국 사회가 언제부터 이렇게 망가졌는지 가슴을 쓸어내린다.

광고대행업체와 만남도 예삿일이 아니었다. 약속에 먼저 온 대행사 사장이 자리에 앉아 기다리던 중, 늦게 온 조 전무가 그랬다지 않은가.

“광고주가 들어오지 않았는데 자리에 서서 대기하지 않고 있었다.” ‘을’이 ‘갑’에게 예의를 안 지키는 건 문제가 있다는, 대놓은 갑질이다.

폭로 내용이 모두 사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흐름을 보면 삼척동자도 유추할 수 있는 일이다. 광고업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조 전무에 대해 “평판이 좋지 않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어 그에 더할 방증이 없다. “광고주라는 지위를 이용해 갑질을 한다고 해도, ‘을’ 입장에서는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쪽 사람들의 육성이다.

이를 ‘조현민 만행 리스트’라 칭하고 있다. 어찌됐든 대중의 분노가 쉽사리 가라앉을 낌새가 아니다. 성급한 진단일지 모르나, 자칫 이번 사태가 대한항공 탑승 거부운동으로 확산될 우려마저 점쳐진다. 대기업도 뿌리째 흔들리면 도산하지 말란 법이 없다. 조현민 파장이 주목되는 이유다.

일을 저질러 놓고, “어리석고 경솔한 제 행동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 판에 박은 사과문 읽기로는 어림없다.

이 땅에서 갑질이 사라지려면 ‘철퇴’를 가해야만 한다. 그게 안되니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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