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者)들을 위한 추모
산 자(者)들을 위한 추모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고운진 동화작가

1제례실 유족들께서는 4! 4번 관망실로 이동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안내방송이 이어지자 제례실 앞에 모여 있던 유족들이 스르르 빠져 나가고 연이어 다른 유족들이 들어온다. 먼 여행을 준비하는 망자(亡者)를 환송함 이련가? 마지막 비행탑승 안내를 듣는 듯 유족들도 숨 가쁘게 움직인다.

벚꽃이 꽃비로 흩날리는 봄날에 삼촌이 돌아가셨다.

투병소식을 접하면서 죽음을 예견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부고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80대 중반을 넘기며 자식들도 훌륭하게 성장시켜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지만 어찌 죽음을 피해갈 수 있으랴?

양지공원 유족 대기실은 마치 어느 대형병원 진료실 앞을 연상케 했다. 전광판에 보여주는 화장중, 준비중이라는 자막만 다를 뿐 북새통을 이루는 모습은 병원 진료실 앞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화장시간이 길어 유족 대기실을 빠져 나와 양지공원을 거닐었다. 화장장 뒤쪽에선 화장로가 돌아가는 소리가 숨 가쁘게 들리고 앞쪽에선 다음 화장을 기다리는 장의 차량이 즐비하다. 세상과 영원한 이별을 준비하는 망자의 기다림이련가? 이동대에 올려진 관이 제례실 앞에 잠시 멈추고 산 자()들을 위한 추모를 기다린다. 화장로 입구에서 추모를 기다리는 관들이라니? 혼백(魂魄)으로 나뉘어 영원히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망자들을 기다리게 하는 건 정녕 누구란 말인가?

산 자()들을 위한 추모는 추모관에서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추모관이 모자라 확장 공사가 한창이었다. 얼마나 삶이 팍팍하고 힘들었으면 찾아올까만 여기가 신앙이라는데 까지 생각이 미치자 끝 모를 허무가 엄습해왔다.

추모실 곳곳에선 정녕 영혼이 존재함이 분명해 보였다.

할머니 고맙습니다.’로 시작된 편지가 감사하며 살겠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서울에서 내려온 손녀가 쓴 편지가 절절하다. 너무 보고 싶다는 이야기 사랑한다는 이야기 더 오래 모시지 못해 미안하다는 이야기들이 애절하다 못해 내 가슴을 후벼댄다. 자손들이 자꾸 찾아오니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닌 영혼들 어찌 편히 저승길이나 재촉할 것인가?

포스트잇은 물론 손편지까지 빽빽이 들어차 있는 마지막 봉안실에선 영정사진 속 처자가 턱에 손을 괸 채 밝은 미소로 나를 바라본다. 꽃다운 모습이다. 뭐가 그리 급해 일찍 세상을 떠나야만 했을까? 웃고 있지만 어찌 이승에서의 한이 없을 리 있겠는가? 부디 산 자()들을 용서하고 처자의 극락왕생을 발원해 본다.

“4관망실 화장이 완료되었으니 유족들은 수골실로 이동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수골실에서 한 줌 재로 돌아온 삼촌은 가족묘지에 안장됐다. 생자필멸이요 인생무상이다.

이제 제주의 화장률도 70%대에 육박한다고 한다. 장묘문화의 대변혁을 예고하고 있다. 죽으면 자연으로 돌아가는 인간, 천장지구(天長地久)의 세월 속에 인간은 한갓 티끌에 불과한 존재가 아닌가? 그래서 이젠 우리 모두 자연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찬란한 봄날에 통과의례를 마치고 자연으로 돌아가신 삼촌님이 부디 모든 것을 훌훌 털고 고이 영면하시길 기원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