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하느님이 내린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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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그린치 신부, 23일 선종···60여 년 간 희생·봉사의 삶
목축업 전파·한림수직사·병원·요양원 등 설립
文 대통령 메시지…“가난하고 소외된 자의 친구”
맥그린치 신부는 양털 스웨터를 생산하기 위해 한림수직사를 세웠다. 사진은 맥그린치 신부가 한림 지역 처녀, 주부에게 양털 자는 법을 알려주는 모습. 사진=사진으로 보는 제주역사
맥그린치 신부는 양털 스웨터를 생산하기 위해 한림수직사를 세웠다. 사진은 맥그린치 신부가 한림 지역 처녀, 주부에게 양털 자는 법을 알려주는 모습. 사진=사진으로 보는 제주역사

60여 년 동안 제주에 헐벗고 굶주린 자를 위해 한 평생을 희생하고 봉사해 온 패트릭 제임슨 맥그린치(한국명 임피제) 신부가 지난 23일 오후 6시 27분께 선종했다. 향년 90세.

1928년 아일랜드에서 수의사의 아들로 태어난 맥그린치 신부는 1951년 사제서품을 받고 1954년 성 골롬반외방선교회 선교사로 처음 제주 땅을 밟았다. 제주시 한림본당에 부임한 신부는 교회는 물론 머물 숙소조차 없어 기숙하게 됐다. 4·3에 이어 6·25전쟁을 겪으며 제주는 폐허가 됐기 때문이다. 그는 제주주민들과 함께 보리밥을 먹으며 한림교회를 세웠다. 그러던 중 1957년 본당 신자인 15세 소녀가 부산에 일하러 갔다가 싸늘한 시체가 돼 돌아왔고, 이를 본 맥그린치 신부는 이들을 돕기로 결심한다.

제주 처녀들과 주민들이 노예처럼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조국 아일랜드에 있는 가족, 친구, 동창들에게 알리며 돈을 보내 달라고 매일같이 편지를 보냈다.

돈이 들어오는 대로 돼지를 사고, 금악리의 척박한 땅 3000평을 사서 주민들에게 목축업을 전파했다. 4-H클럽을 결성해 청년들에게 교육을 실시했고, 신용협동조합을 창립해 경제적 자립의 토대가 되도록 했다.

또 그는 페르시아의 아치형 궁전인 ‘테쉬폰’을 모방해 개척농가 주택을 건립해 주민들을 입주시켰다. 당시 개척농가 100가구와 창고 등 부속건물도 이 양식으로 지었고, 300호 이상의 건물을 설립했다. 그 가운데 금악리에 있는 건물은 원형이 건재해 이색 건물로 각광받으며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양털 스웨터를 생산하기 위해 한림수직사를 세웠고, 한림에 거주하는 처녀, 주부 1200여 명은 뜨개질로 돈을 벌었다. 농업기술연수원을 설립해 우유, 치즈, 배합사료 공장을 처음으로 제주에 설립하기도 했다.

여기서 창출된 수익금으로 소외계층을 위해 한림 성이시돌 병원, 성이시돌 양로원과 요양원, 유치원과 어린이집, 성이시돌 젊음의 집 등을 설립했다.

2002년에는 성이시돌복지의원에 무료 호스피스병동을 신축했다. 저소득층 사람들도 존엄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설립한 것이다.

맥그린치 신부는 2014년 ‘자랑스러운 제주인’으로 선정됐고 2015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모국인 아일랜드 정부로부터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천주교 제주교구는 24일 “맥그린치 신부가 노환으로 선종했다”며 “65년이라는 세월 동안 제주의 지역 개발 특히 경제적 자립 및 교육과 복지를 위해 헌신하며 교회의 담장을 넘어 제주 모든 이들에게 ‘양 냄새 나는’ 목자의 모범을 보여주셨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친구가 됀 맥그린치 신부님의 사랑과 평안을 깊이 새기고 이어가겠다”며 신부의 영면을 기원하는 애도 메시지를 전했다.

빈소는 천주교 제주교구 한림성당에 마련됐고, 장례미사는 27일 오전 10시 성이시돌 목장 삼위일체대성당에서 진행된다. 장지는 성이시돌 글라라 수녀원 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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