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바른 이름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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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일, 문학박사

사느냐, 죽느냐 그게 문제로다. 제주시 봉개동에 자리한 「4·3 평화 공원」을 찾아 묵념하고 명복(冥福)을 빌 적마다 ‘4·3의 뜻과 정신’을 헤아리며 삼매에 빠진 지가 한두 번이 아니다.

“유(由)여[아끼는 제자 이름]!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불순하고, 말이 순조롭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름을 바르게 한 다음 명분이 서면 반드시 말을 할 수 있어야 하고, 말을 하였으면 반드시 실행해야 한다.”[名不正則言不順, 言不順則事不成, 故, 君子 名之 必可言也, 言之 必可行也. -論語,子路篇-].“ 정명론(定命論)을 밝힌 논어 구절이다.

‘4·3’ 70주년을 맞아, ‘4·3 정명[正名, 正命] 운동이 일어나니, 그 바른 이름을 찾아보다.

① ‘4·3’ ② ‘4·3 사건’ ③ ‘4·3 희생’ ④ ‘4·3 항쟁’ ⑤ ‘4·3 민중 항쟁’ ⑥ ‘4·3 평화’로 명명(命名)할 적에 어느 게 ‘바른 이름’일까?

천주교 강우일 주교께서는 ”제주 4·3의 발화점이 됐던 1947년 3·1절 기념 대회는 일제 강점기에 끈질긴 저항과 투쟁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난 도민들의 적극적인 행동이었다. 4·3은 일제에 이어 또 다시 이 땅을 지배하고 수탈하려는 세력에 대항한 저항의 몸짓이었다. 이제는 4·3에 ‘항쟁’이란 이름을 붙여도 좋겠다.”고 했다.

그의 생각은 참으로 거룩하다. 4·3을 항쟁으로 부름은, 4·3의 원인과 과정에서 본 명명이다. 또 어떤 이는 ‘제주 4·3 민중항쟁’이라는 정명을 붙이기도 했다. 어떤 이는 역사적 맥락에서 ‘4·3 사건‘으로 하자. 또는 그냥 ’4·3’으로만 하자는 생각들이다. 그런데 4·3을 인과론과 목적론에 따른 정명은 없을까?

‘4·3’이란 숫자는 4=사(死)=죽음과 3=생(生)=삶으로 보면, 삶과 죽음[生死]을 뜻하는 개념을 지닌다. 한마디로 ‘사느냐, 죽느냐. 그게 문제다.’

삶과 죽음을 초월하여 해원과 화해와 상생의 길을 찾는 게 염원이라면, 이 땅에 평화가 깃드는 도민의 행복을 추구함이 대승(大乘)의 길이 아니겠는가? 지난날의 비극과 원한에만 슬퍼하기보다는,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에서 ‘전쟁’보다는 ‘평화’를 더 희구하듯, 도민들이 화해와 상생의 길로 행복을 추구하는 목적 지향(志向)적인 바른 이름이 없을까? 결국은 현재 살고 있는 도민과 미래 후손들이 행복과 평화를 누리게 되면, ‘4·3 평화(平和)’로 규정할 수도 있겠다. ‘항쟁’보다는 ‘평화’가 더 숭고하다. 이미 봉개동에 조성된 ‘4·3 평화공원’으로 이름이 붙여진 이상, 그 뜻과 정신을 살리는 길도 의미가 깊다. 그런 뜻에서 ‘4·3 유족회’는 ‘4·3 평화 유족회’로 고쳐 부르는 것도 한 방편이다. 제주 도민의 코드네임에 ‘평온(tranquility)’을 붙여, 바른 이름을 ‘제주 4·3 평화(peace)’로 붙이고 싶다.

‘하늘 아래 사람 치고 녹(祿) 없는 사람 없고, 땅 위에 이름 없는 풀이 없다[天不生無祿之人, 地不生無名之草]’ 했거늘,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과 사람에게는 다 이름이 있다. 단지 그 이름을 모를 뿐이다.

말과 글에는 뜻이 있고 씨가 있다. ‘말 한마디, 단어 하나’가 세상을 바꿔 놓는다. 이제 ‘4·3’의 바른 이름을 ‘4·3 평화’로 부르자! 4·3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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