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 쉬운 일본어’와 일본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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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정, 일본 치바대학교 준교수

작년 한해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 숫자는 2869만명. 유명 관광지와 그 지역 상점가는 연일 외국인 관광객으로 넘쳐난다. 관광지 주변에서는 외국인과 소통하려는 관광종사자나 현지 일본인의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영어도 다른 외국어도 아닌, 또 보통 일본어도 아닌, 일명 ‘알기 쉬운 일본어’(やさしい日本語)라 불리는 말이라는 점이다. ‘알기 쉬운 일본어’는 보통 일본어보다 간단하며 외국인도 알기 쉬운 일본어를 말한다.

장어와 전통적인 뱃놀이 체험으로 한국인에게도 유명한 후쿠오카현의 야나가와시도 바로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는 곳 중에 하나다. 그러나 이 지역 관광종사자는 대부분이 고령자라 외국인과 소통이 어렵다. 야나가와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광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한 ‘알기 쉬운 일본어’ 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 중에는 간단한 일본어를 쓰고 싶어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외국인이 접근하기 쉬운 ‘알기 쉬운 일본어’는 또 하나의 관광 서비스가 되고 있다.

‘알기 쉬운 일본어’에 대한 논의는 1995년 한신 아와지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지진으로 인한 외국인들의 피해는 일본인보다 두 배나 많았다. 언어문제로 재해에 관한 정보를 제대로 전달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히로사키대학교 사토 카즈유키 교수의 연구 그룹은 재해 발생 시 외국인을 위한 정보전달 수단으로 ‘알기 쉬운 일본어’를 고안했다. ‘알기 쉬운 일본어’는 한자어 사용 시에는 반드시 한자 읽는 법을 표시하고 12가지의 문법적 규칙을 바탕으로 어휘나 표현의 수준을 조절한 일본어 형식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한 예로 ‘여진’은 나중에 오는 지진, 화재발생 시 라이프라인의 하나인 ‘급수차’는 물을 실은차, ‘행방불명’ 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사람 등으로 표기하거나 말을 한다.

이후 다시 두 번의 큰 지진을 경험하면서 ‘알기 쉬운 일본어’에 대한 필요성과 요구는 더욱 많아졌다. 그 논의 과정에는 외국인뿐 아니라 일본의 고령자와 지적 장애인까지 ‘알기 쉬운 일본어’를 필요로 하는 대상으로 포함됐다. 최근에는 방재와 외국인의 언어지원과 관련된 기관만이 아니라 일본어 교육을 담당하는 선생님들, 그리고 외국인과의 교류를 원하는 일반 시민을 위한 ‘알기 쉬운 일본어’강좌도 개설됐다. 공영방송 NHK도 2012년부터 알기 쉬운 일본어 뉴스사이트를 개설해 온라인 뉴스를 제공하고 있다.

흔히 영어나 자국어로 의사소통을 원하는 외국인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62.6%는 자신이 이해 가능한 외국어로 일본어를 꼽고 있다. ‘알기 쉬운 일본어’ 논의는 재해가 발생했을 때 외국인에게 효과적인 정보전달을 하기 위해 시작됐다. 이는 소수에게 다수의 언어 사용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가 소수의 언어에 맞추려 한다는 점에서 일본 사회의 언어 사용에 대한 중요한 인식의 전환점이 되고 있다. 물론 그 논의의 이면에는 언어의 설정기준과 범위, 일본어의 변질 그리고 두 가지 언어형식이 공존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이중언어 권력의 문제 등을 우려하는 의견도 많다. 알기 쉬운 일본어를 통한 소통이 점점 더 강화될수록 일본 사회의 언어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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