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그리고 제주
판문점, 그리고 제주
  • 제주신보
  • 승인 2018.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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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병, 경제부장

2018년 4월 27일, 오늘은 한반도는 물론 전 세계 역사에 큰 획을 긋는 날이다. 바로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기 때문이다.

2000년 6월 13일 분단 이후 처음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고, 7년 후인 2007년 10월 2일 노무현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다.

이제 11년 만에 세 번째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난다. 만남의 장소는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이다.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최초로 남측 땅을 밟게 되는 것이다. 분단의 상징이었던 판문점은 평화의 상징으로 거듭나게 됐다.

판문점은 직선거리로 서울에서 52㎞, 평양에서 147㎞ 지점에 위치해 있다. 남측 행정구역상으로는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 어룡리, 북한 행정구역상으로는 개성특급시 판문군 판문점리에 해당하지만 공식적으로는 남과 북 어느 쪽의 영토도 아니다.

판문점은 6·25 이전에는 ‘널문’이라는 지명으로 이름 없는 초가집 몇 채만 있던 작은 마을이었지만 전쟁 중이던 1951년 10월 25일 이곳의 ‘널문리가게(주막을 겸한 조그마한 가게)’에서 휴전회담이 열리면서 전 세계에 알려졌다.

당시 휴전회담은 한국어, 영어, 중국어 등 3개 국어를 공용어로 사용했는데 중국어 표기를 고려해 한자로 ‘판문점(板門店)’이라는 지명이 탄생했다. 이후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이곳에서 체결되면서 남과 북이 유일하게 철책 없이 서로 얼굴을 바라볼 수 있는 ‘공동경비구역(JSA: Joint Security Area)’이 만들어졌다.

JSA는 말 그대로 남북한이 공동으로 경비하는 구역이었다. 쌍방 군정위 관계자들은 구역 내에서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76년 8월 18일 북한군의 도끼만행사건 이후 양측 간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군사분계선을 표시하고 분할 경비로 바뀌었다.

판문점에서는 정전협정 체결 이후 군사정전위원회 회담이 진행됐다. 1971년부터는 남북적십자회담 예비접촉을 시작으로 총 360여 회의 남북회담이 열렸다. 판문점지역 자유의 집과 판문각 사이 높이 10㎝, 폭 50㎝의 콘크리트 턱으로 표시된 군사분계선은 분단의 비극을 보여주는 상징이 됐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만남인 북미정상회담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게 된다. 남북정상회담이 어떤 결실을 이뤄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그 시기와 장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일단 5월에서 6월 만남이 예정돼 있고, 만남의 장소 중 하나로 ‘제주’가 거론되기도 한다. 일부 언론에서는 제주가 아닌 몽골이나 싱가포르로 압축됐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지만 제주에서 열릴 수 있다는 기대를 끝까지 가져본다.

‘세계 평화의 섬’ 제주는 정상회담이 메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1년 4월에는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비에트연방공화국 대통령, 1996년 4월에는 김영삼 대통령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6월에는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 총리, 2004년 7월에는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제주에서 만났다. 2009년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2010년 한·중·일 정상회담도 제주에서 개최됐다.

뿐만 아니라 제주는 감귤 북한 보내기 등 남북교류 사업이 그 어느 지역보다 활발하게 전개해 왔다. 김정은 위원장의 어머니의 고향이 제주라는 사실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세계 평화의 섬 제주가 한반도를 넘어 세계 평화의 초석을 다지는 역사적인 장소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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