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굽은 소나무를 바람이 쓰다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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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변시지 추모공원(下)
황갈색의 모노톤, 제주의 원형질을 끄집어내 세상에 선보여
비바람이 몰아치는 환경서 잉태된 외로움을 작품으로 승화

바람난장 가족들은 ‘변시지 추모공원’과 곁에 야외공연장을 거쳐 변시지 화백의 작품이 전시된 기당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도형 기타리스트와 현순량 오카리나 문화원장, 서란영 팬플룻 연주가가 합동 공연을 열었고, 박연술 무용가가 이들 곡에 맞춰 퍼포먼스를 펼쳤다.
바람난장 가족들은 ‘변시지 추모공원’과 곁에 야외공연장을 거쳐 변시지 화백의 작품이 전시된 기당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도형 기타리스트와 현순량 오카리나 문화원장, 서란영 팬플룻 연주가가 합동 공연을 열었고, 박연술 무용가가 이들 곡에 맞춰 퍼포먼스를 펼쳤다.

제주 바다에는

까마귀 떼만 자욱했다

이명(耳鳴) 같은 파돗소리에 묻히는

해 뜨기 전

예감의 시간에 바닷가로 나온

검은 점술의 巫女들이 부르는

강신(降神)의 휘파람 소리.

그 휘파람 소리만 자욱하다.

솟구치는 파도의 이랑보다 더 깊은

저 생자와 죽은 이의 영계(靈界)를 넘나들며

슬픈 영혼(靈魂)들을 달래는….

 

-검은 서정(抒情) 전문/이수익

 

 

변시지 화백의 작품이 전시된 기당미술관에서 이경은 현대미술관 관장이 변시지 화백의 세계관을 설명하고 있다.
변시지 화백의 작품이 전시된 기당미술관에서 이경은 현대미술관 관장이 변시지 화백의 세계관을 설명하고 있다.

변시지 화백의 전시 공간, 기당미술관으로 향한다. 변 화백이 계시다면 이날처럼 비 오는 날, 난장의 걸음에 어떻게 응대해주실까. 그린다면 거기에도 밝은 황토빛으로 채우실까를 떠올리다 웃음이 번진다.

 

기당미술관에서 이경은 현대미술관 관장으로부터 변시지 화백의 세계관을 듣는다.

제가 17년간 근무했던, 이곳은 재일교포 기당 강구범 선생께서 기증해주셨다. 화백은 1926년 서귀포시 서홍리에서 태어나 6세에 일본을 가, 오사카 미술학교를 다니며 최연소로 일본 최고 권위의 미술전 '광풍회전'에 최고상을 수상하며 반열에 오른다. 1957년 서울대 미대로 초청된다. 1974년 제주로 와 ‘제주화’를 그리다, 80년대 초 인상파의 영향으로 변시지 풍의 황갈색 모노톤, 제주의 원형질인 마음 깊은 곳을 끄집어내 군더더기를 걸러낸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뛰어넘는다. 작품 속에는 늘 비바람이 몰아쳐 풍토라는 환경에서 잉태된 외로움은 작품으로 승화된다.

재현된 작업실이 대변하듯 늘 검소하여 아파트에서 작업, 오직 그림만을 위해 포기할 줄 알던 천생 화가다. 규칙적인 생활로 늘 걸어서 다니며, 술은 잘 드셨으나 밥값만큼은 남에게 기대지 않던 철칙이 있다. 작품에는 제주의 바람과 제주사람이 겪던 핍박과 고난이 자화상처럼 녹아있고, 2000년 이후 바람이 없어진, 평화스런 밝은 황토색에 세월이 묻어 경지에 이른다.

 

‘검은 서정(抒情)’ 이수익의 시를 이정아, 강순자 낭송가 둘이 낭송한다.

‘제주 바다에는/까마귀 떼만 자욱했다/이명(耳鳴) 같은 파돗소리에 묻히는….’

이 시는 변시지 화백의 작품을 본 이수익 시인이 쓴 시다. 변 화백은 서귀포에서 자주 만나 술잔을 기울이던 한기팔 시인에게 이 작품을 건넸다는 일화가 있다.

 

이정아·강순자 시 낭송가가 이수익 시인의 시 ‘검은 서정’을 낭독하고 있다.
이정아·강순자 시 낭송가가 이수익 시인의 시 ‘검은 서정’을 낭독하고 있다.

전시장 안, 바닥도 작품의 배경색인 듯 난장팀도 풍경으로 자리한다.

‘하늘 끝에 이르는 바람’곡을 현순량의 오카리나와 서란영의 팬플룻, 김도형의 기타 연주 콜라보에 춤꾼 박연술의 공연으로 어우러진다. 오카리나 연주에서 흙의 감촉이, 기타 연주에서 진황색으로 휘도는 태양의 기운이, 팬플룻 연주에선 등 굽은 외로운 소나무를 스쳐가는 바람 소리가 느껴진다.

비 오는 날의 다행인가, 전시장 바닥에 살짝 얼비치는 물에 박연술 춤꾼이 놓칠세라, 맨발과 손바닥으로 물감인 듯 묻혀 그려가는 무대가 좁아 보인다. 그녀의 하늘거리는 황토빛 긴 조끼 자락과 얇은 천의 젖은 바지 자락도 화가의 마음을 대변하듯 찰랑거린다. 절박함을 대신하던 혼신의 동작에 한 폭의 그림이 완성되듯 화백의 작품 안, 햇빛이 손짓하는 동산 위의 초가집 울타리 안으로 깃든다. 연습 없이 마련된 즉흥무대지만 부족함이 없는 공연에 관객들 또한 하나였으리라.

 

폭풍의 화가 변시지, 제주에서도 2년여의 번민 끝에 자신만의 빛, 색깔을 찾아낸 그다. 바람의 절규를 듣고, 제주다운 숨결로 독창적인 화풍을 구축한다. 섬 속의 섬인 존재로서 분신처럼 소통하던 외족오, 각별한 까마귀 사랑 탓인지 제주에서만큼은 까마귀도 길조인 연유다. 적은 선으로 큰 울림을 주는 세계적인 화가, 간결함속에서 위로를 얻는다.

베레모, 지팡이와 나서던 화가의 외출처럼 난장의 나들이도 밝은 황토빛에 물들다.

 

 

글-고해자

그림-김해곤

사진-채명섭

영상-고대환

시낭송-김정희와 시놀이(김정희·장순자·이정아·이혜정)

연주-김도형, 현순량, 서란영

퍼포먼스-김백기, 박연술

음악감독-이상철

 

비가 내리던 지난 4월 14일 변시지 추모 공원에서 바람난장 가족들이 변시지 화백의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비가 내리던 지난 4월 14일 변시지 추모 공원에서 바람난장 가족들이 변시지 화백의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다음 바람난장은 28일 오전11시, 서귀포시 서홍동 면형의 집에서 진행됩니다.

 

‘예술나무심기 프로젝트’에 도민 여러분들의 후원과 참여를 기다립니다.

예술나무심기는 문화예술의 향기를 전도에 퍼뜨리고, 무분별한 개발로 훼손된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바람난장이 마련한 프로젝트입니다. 제주의 환경과 생태가 안정화되는 날까지 나무심기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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