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인의 집에서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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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건, 제주대 교수 교육학 전공/논설위원

당신에게 오랜만에 손편지를 써봅니다. 문자나 메일 대신 앞으로 편지를 써보려고 합니다. 아시겠지만 조선시대 유배인의 경우는 외부와의 유일한 의사전달 방법이 편지였습니다. 다산 정약용은 18년 유배 동안 두 아들과 제자들에게 수 백 통의 편지를 썼고, 제주에서 추사 김정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혹독한 유배생활 중에도 그들은 정성으로 편지를 보냈던 것입니다. 저도 그들을 따라 당신에게 편지를 써보고자 합니다.

제가 편지를 쓰는 곳은 애월읍 어음리의 달팽이집이라는 뜻의 어음와여(蝸廬)입니다. 저의 작업실이자 유배지입니다. 추사 김정희의 제자였던 강위가 제주도까지 찾아와 보니 스승이 유배 생활하던 집이 작고 보잘 것 없어서 와여(蝸廬) 즉 ‘달팽이 집’이라 했는데 저도 여기서 이름을 빌렸습니다. 그러니까 어음 유배인의 집에서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원래 유배인의 집은 위리안치(圍籬安置)라고 하여 죄인이 달아나지 못하게 가시나무 울타리로 둘러쳤는데 그러나 저의 작업실은 누추하지만 그런 울타리는 없습니다. 그런데 굳이 유배인의 집에서 편지를 쓴다고 하는 이유는 이곳에 올 때마다 일상으로 부터 벗어나는, 뭔가로부터 떨어져 보는 기분을 맛보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가장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는 일이 TV시청, SNS, 문자를 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한편 가장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는 일이 운동과 산책 그리고 여행이라고 했습니다. 특히 여행은 뭔가로 부터 벗어나는 경험, 떨어져 보는 경험을 가장 많이 주기 때문에 의미와 재미가 가장 크다고 합니다.

유배는 무서운 형벌이었지만 그 덕분에 당쟁이나 가족과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맛볼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영조 때 서명응은 함경도 갑산에 유배되었지만 “이곳으로 유배되어 온 것은 하늘이 백두산을 한번 구경시키기 위한 것이다”라고 하면서 백두산을 구경하고 「유백두산기(遊白頭山記)」를 쓰기도 했습니다. 김정희도 유배의 기회 덕분에 추사체(秋史體)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오늘 당신에게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경험을 적극 권합니다. 여행도 좋지만 주변에서 새로운 경험을 맛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보기를 권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아지트, 자신만의 공간에 스스로를 유배 보낼 수 있다면 더욱 효과적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 또한 저의 유배지인 어음와여에서 당신에게 편지를 써보는 것입니다.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J.P.Sartre)를 아실 겁니다. 그는 동네 카페를 자신만의 공간으로 삼았는데 “플로르 카페로 가는 길은 내게 있어 자유에 이르는 길이었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당신도 카페든 도서관이든 혹은 다락방이든 당신만의 공간에서 유배인이 되어보시기 바랍니다. 그곳에서 독서도 하고, 멍도 때리고 음악도 듣되 홀로이길 권합니다.

“숨어 지낸 자가 값진 인생을 보낸 자(Bene qui latuit, Bene vixit)”라는 말이 있습니다. 유배의 시간은 결코 외롭거나 헛된 시간이 아님을, 의미 있고 재미있는 새로운 경험의 시간임을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런 경험을 제대로 누릴 때 나이가 들어가면서 비로소 건강할 수 있음을 힘주어 강조하고 싶습니다. 오늘 어음와여에서 당신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가 제대로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조만간 또 편지를 써 보내겠습니다. 그때까지 총총 안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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