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에서 피기 시작한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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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혁, 시인·문화평론가

‘평화의 집’ 모든 불빛들이 사그라지고 ‘하나의 봄’이라는 문구가 벽을 채웠다. 그리고 아침부터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분단의 선을 넘고 넘는 사진부터 슬라이드로 펼쳐졌다. 한반도에서 더 이상의 전쟁은 없으며, 진정한 평화의 시대가 열렸다고 두 정상은 ‘판문점 선언’을 했던 것이다. “겨울은, 바다와 대륙 밖에서/ 그 매운 눈보라 몰고 왔지만/ 이제 올/ 너그러운 봄은, 삼천리 마을마다/ 우리들 가슴 속에서/ 움트리라”(신동엽, 「봄은」 중)라고 했다. 외세가 가져다준 분단이지만 그 매서운 눈보라를 뚫고 통일을 이뤄낼 주역은 바로 우리여야 한다는 것이다. 4자도, 6자도 아닌, 바로 남북한 당사자가 먼저 평화의 봄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니 어찌 감격스럽지 아니한가?

그런데 이것은 통일로 가는 로드맵의 서막에 불과하다.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핵 없는 한반도 만들기, 정전 협정을 끝내고 완전한 종전을 선언하기, 불가침을 통한 한반도 긴장 완화와 평화 정착 등 모든 일들이 ‘판문점 선언’의 적극적 이행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 노정에 패권을 장악하려는 열강들이 딴죽을 놓고, 발톱을 세운 강경파나 군수산업체가 가탈을 부릴 것이다. ‘일본 패싱’을 염려해 궁지에 몰린 아베는 어떤 정치적 꼼수를 부릴지 걱정스럽다. 어느 야당은 지방 선거를 의식해 ‘나라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판문점 선언을 ‘위장 평화 쇼’라고 깎아내린다.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분단을 종식시킬 수 없다며, 남북 협력을 거부하고 북한 붕괴의 대박만을 꿈꾸며 전술핵 운운하던 이들이 이제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그들은 ‘레드콤플렉스’라는 낡은 무기를 여전히 만지작거린다. 통일을 위한 지혜를 모아도 시원찮을 판에 훼방꾼으로 나선다.

강대국들의 패권 장악 놀음에 남북이 갈리고, 총부리를 겨눈 전쟁에서 139만 명이 죽어야 했고, 정전 후 65년 동안 수많은 이들이 죽음에 내몰렸다. 분단과 제국주의를 넘어서지 못한다면 전쟁의 위협은 계속될 것이고, 열강들의 손아귀에서 진정한 독립과 자유의 대한민국은 성립될 수 없다.

이제 때가 오기 시작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이 핵을 포기하고, 경제에 ‘올인’을 하겠다고 나선 마당이고, 으르렁거리던 트럼프 대통령이 궁지에 몰리면서 자신의 정권 연장을 위해서도 종전 선언을 해야 할 때이며, 중국이나 일본, 러시아도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부르짖는 때인 것이다. 우리는 이때를 잘 살려내려 안간힘을 써야 할 때이다.

남북한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 실향민이면서 『판문점』이라는 소설을 쓴 이호철 선생은 “우리 남북 관계 속에서도 ‘효율’이라거나 ‘전략’이라거나 그런 것이 주종이 되는 것이기보다는, 바로 ‘진정한 마음’, 저 테레사 수녀의 맑고 투명한 마음에 안받침된 참된 ‘성심’이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한살림통일론』, 47쪽)라고 쓰고 있다. 그가 말하는 ‘진정한 마음’이란 ‘성심’이요, 불교에서 말하는 ‘보살’의 마음과 같은 것일 게다. 사사로운 욕망에 휩싸이지 않고, 남북한 민중, 나아가 인류가 평화와 사랑이 넘치는 세계를 구현하고야 말겠다는 마음이다. 그런 마음으로 나아간다면 우리의 봄은 “움터서,/ 강산을 덮은 그 미움의 쇠붙이들/ 눈 녹이듯 흐믈흐믈/ 녹여버리겠지.”(「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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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래 2018-04-29 19:18:31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