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혈 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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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동철 정치부장

선거는 전쟁에 비유되곤 한다.

‘수성이냐 탈환이냐를 놓고 치열한 접전이 예상된다’로 기사가 시작되는 이유다. 선봉장으로 나서 깃발을 꽂겠다, 지난 패배를 설욕하겠다는 표현도 선거 보도에 등장한다.

가장 많이 쓰는 ‘출사표를 던졌다’에서 출(出)은 출동하다, 사(師)는 군사 또는 군대를 의미하고, 표(表)는 자신의 생각을 밝힌다는 뜻이다.

제갈량이 유비의 유언을 받들어, 위나라를 토벌하러 떠나는 날 촉한의 2대 황제 유선 앞에 바친 글이 출사표다.

한나라의 명장 한신이 조나라 군사와 맞서 사생결단으로 싸워 이긴 데서 유래한 배수진도 선거전에 자주 나온다. 강물을 등지고 진영을 친 것은 죽음을 담보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절박함을 드러내고 있다.

죽음까지 각오한 전쟁의 결말은 승자와 패자로 갈리게 된다. 2등은 설 자리가 없는 선거도 마찬가지다.

6·13지방선거에서 도의원 선거는 최대 5파전까지 전개되면서 군웅들이 치열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 지금까지 예비후보로 70명이 출전했다.

성을 점령하기 위해 군웅할거가 펼쳐지는 가운데 대결이 사라진 영토가 나오고 있다.

바로 무투표 당선이다. 전쟁에 빗대면 무혈 입성이다. 이번 선거에서 무투표 당선인은 역대 기록을 깨뜨릴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무투표로 당선된 도의원은 1회 지방선거에서 1명, 2회 선거에서 2명, 5회 선거에서 1명 등 1995년 민선시대가 열린 이래 모두 4명에 머물고 있다.

이번 선거에선 제주시 노형동 갑, 노형동 을, 한경면, 서귀포시 표선면 등 4곳에서 현역이 단독 출마, 무투표 당선이 점쳐지고 있다. 앞으로 40일 남은 선거에서 일부 지역구는 대항마가 등장할 예정이지만 전세를 역전시킬 장수는 나오기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교육의원 선거구는 5곳 중 4곳에서 무투표 당선이 굳어져 가고 있다. 교육의원 80%가 무혈 입성하는 셈이다.

3선 도전에 나선 모 교육의원은 4년 전에 이어 2회 연속 무투표 당선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깜깜이 선거’에 이어 퇴직 교장 출신들의 전유물이 됐다는 비판이 불거진 가운데 5명 중 4명이 무투표 당선이 유력해졌다. 불씨가 붙은 교육의원 제도 폐지 논란에 기름을 들이붓는 격이 됐다.

초등학교 반장에서 마을 이장, 도의원, 도지사 선거에 이르기까지 해당 구성원들의 대표자 또는 공직자를 제대로 뽑는 민주적 의사 절차가 바로 선거다. 그래서 선거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각 지역을 대표할 민의(民意)의 대변자이자 선량(選良)을 뽑는 도의원 선거는 앞으로 4년간 제주의 발전과 미래를 담보로 치러지고 있다.

그래서 선거는 축제의 장이자 유권자에겐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는 권리의 장이기도 하다.

이 와중에 “무투표 당선이라며? 축하해.”라며 ‘이례적인’ 축하인사를 주고받는 상황도 나올 수 있겠다.

어찌 보면 무투표 당선은 그 자체가 지난 4년간 충실한 의정 활동과 민의를 대변해 검증을 받았다는 보증수표일 수도 있다.

당락을 떠나 도민들의 부름을 받고 오는 7월 개원하는 제11대 제주특별자치도의회에 입성할 모든 의원들의 활약에 기대를 걸어 본다. 그리고 4년 후엔 누가 무혈 입성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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