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식탁에서
홀로 식탁에서
  • 제주신보
  • 승인 2018.05.0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영희, 수필가

남편이 외출한 후, 음악을 들으며 는적거리는 시간이 호젓하다. 혼자 먹자고 차리기도 귀찮아 점심은 대충 때우기로 했다. 별 생각 없이 우걱우걱 숟가락질 하다 울컥 목이 메었다. 국물도 없이 남은 밥에 김과 김치가 전부다. 차림도 후줄근한데 먹는 것이 더 초라한 내 모습에, 정신이 번쩍 들어 수저를 놓았다. 스스로 푸대접하는데 누구에게 대접 받기를 기대할까.

나이 들면 밥이 곧 보약이라 한다. 편한 게 좋다고 게으름 피우다 자신에게 홀대 해놓고 마음이 착잡하다. 찬이 없어도 새로 지은 따뜻한 밥 한 그릇이면, 혼자 먹더라도 속이나마 따스했을 것 아닌가.

가끔 푸짐하게 차린 밥상이 그리울 때가 있다. 자식들을 끼고 살 때는 이것저것 만들어 놓으면, 남는 것보다 부족한 게 오히려 많았던 시절이다. 맛나게 먹던 모습으로도 훌쩍 크는 게 보이는 것 같아 뿌듯했다. 여자는 출산 후 탯줄을 끊자마자 가슴 풀어 젖을 먹이는 것으로 어머니의 책임이 시작된다.

여럿보다 두 식구 찬이 더 신경 쓰인다. 양을 줄여도 번번이 남아 들락거리다, 아깝다고 버리지 못해 혼자 몫이 되곤 한다. 손맛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에, 입맛도 나이 들면 변한다고 변명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남이 차려 준 밥상이 그리워, 한 끼 정도는 사 먹는 게 낫다고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도 이젠 물린다.

아이들이 온다 하면 냉장고부터 채운다. 어미가 만든 음식이 그리웠을 같아, 함께 먹고 싶었던 것들을 빠질세라 사들인다. 배를 곯고 사는 것도 아닌데, 마치 허허로웠던 속내를 채우기라도 할 것처럼, 한 점이라도 더 먹여 보내고 싶어 안달이다. 도시의 삶은 늘 숨 가쁘다. 엄마 곁에 오는 건 휴식이라 생각하는 자식들이다. 잠시나마 푸근하게 쉬어 가는 휴식처가 되고 싶은 게 어머니의 마음이다.

세탁물도 한두 가지 넣고 세탁기를 돌리기가 애매해, 웬만하면 손으로 주물러 넌다. 건조대에 널린 몇 안되는 옷가지는, 빈 나뭇가지에 매달린 색 바랜 낙엽 같다. 마치 늦가을로 접어든 노년의 삶처럼 쓸쓸해 보인다.

골목길을 걷다 알록달록 바람결에 나부끼는 빨래를 보면, 마치 지난날 우리 집을 보는 것 같다. 빨랫줄에 가득 널렸던 옷가지는 한창 풋풋했던 시절이었다. 새물내 나는 빨래는 남편과 아이들의 고단하나 건강한 일상의 체취가 흠뻑 배어 있었다. 물오른 나무 같았던 그때는 왕성한 식욕만큼, 무엇을 하고 싶은가 하는 꿈으로 가슴 부풀었던 때였는데….

옛날처럼 자식들에게 수발을 받기는 요원한 세상이다. 평생 내 손으로 치다꺼리하다 가야 한다. 결국, 마주 앉아 함께 밥을 먹을 상대도 부부뿐이다. 아직은 자식들보다 여위어 가는 남편의 등이 더 따뜻하고 편하다. 뜨거운 열정보다 서로 안쓰럽고 측은하게 여기며 사는 게 저물어 가는 부부의 애틋한 정일 테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같이 밥을 먹어야 가족 간에 애착이 생기는 법인데, 한자리에 모이기가 쉽지 않다. 성대한 축하행사나 효도잔치도 좋지만, 가족끼리 오순도순 보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따뜻한 밥 한 끼 같이 먹으며, 그간 서로 소홀해 서운했을지도 모를 시간을 오붓하게 보낸다면 더 유의미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