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어오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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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설레임과 두려움으로/ 불안한 행복이지만/ 우리가 느끼며 바라본/ 하늘과 사람을/ 힘겨운 날들도 있지만/ 새로운 꿈을 위해/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남북 정상 회담 만찬장에서 고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제주의 어린 소년 오연준이 불렀다. 감동적이었다. 금 쟁반에 은구슬 굴리듯 청아한 목소리가 듣는 이들 가슴에 여울로 흐른 것은 노랫말 중 ‘새로운 꿈을 위해’, ‘그곳으로 가네.’였다. 우리가 가려는 공동의 ‘지향’을 은유한 것 같아 유의미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외가가 제주인 것, 판문점 기념식수를 위해 제주에서 파고 간 한라산 흙과 평화의집에 걸린 성산일출봉 그림이 ‘제주’라는 일련의 연상으로 떠올랐다.

지난 4·27 남북정상회담은 뜬금없이 꿈꾸는 것만 같았다. 한 편의 드라마였다.

성큼성큼 군사분계선에서 걸어 내려와 남한 땅을 밟은 김정은 위원장의 역사적 행보. 그러더니 문 대통령이 북측 땅으로 발을 내딛는 월경(越境)의 연이은 그 걸음. 이 장면에 우리, 얼마나 감격했는가. 쇼가 아니었다. 눈앞에 벌어진 불가역한 것의 분명한 해체였다. 울림을 담아낸 것은 또 있었다. 그 순간 내지르던 국내외 취재진들의 환호성.

김 위원장의 국군의장대 사열은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이어진 수행원들 인사에서 북한 군 장성이 우리 대통령에게 거수경례를 한 것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는 그날 아침부터 밤 10시까지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휴회했을 때도 패널들 목소리에 집중한 채 오후 회담 시간을 기다렸다. 이 일을 젖혀 놓고 다른 일에 손이 타게 되질 않았다.

절정은 도보다리 산책 중 이뤄진 단독회담이었다. 취재진까지 따돌려 가며 이뤄진 둘만의 대화. 원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다가앉은 밀담의 시간 30분. 무슨 말을 나눴을까보다, 내겐 둘만의 시간이 될 수 있게 한 우리말이 한없이 은혜로웠다. 언어가 하나여서 가능했던 민족적 소통이었다.

얘기하면 고개 끄덕이고, 말을 주고받으며 활짝 웃고. 내밀한 뒷얘기는 언젠가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될 것이다. 대화를 끝낸 뒤 어깨를 맞대고 돌아오는 모습은 이미 남북 두 정상이 아닌, 다정한 형제처럼 보였다. 상상도 못한 일이다. 너무 나가는 건 경계할 일이나, 이것으로 된 것이라 생각했다.

판문점선언 3항 ④에,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고 했다, ‘완전한 비핵화’를 끌어냈다. 공동의 목표 운운한 데 그쳤다, 목표는 앞으로 실현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여지는 있다. 하지만 북미회담이서 좀 더 구체화할 게 분명하다. 상당한 조율을 거쳐야 할 건 분단 유래가 말해 준다.

문 대통령의 부드러운 리더십이 김 위원장을 움직였고, 중·러의 지지를 이끌었다. 김정은 위원장도 “조선전쟁의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 왜 우리가 핵을 가지고 어렵게 살겠는가?”고 속내를 털어놨다. 말에 대한 신뢰와 진정성의 판단은 시간을 기다려야겠지만, 이전과는 다른 목소리로 들린다.

한반도에 순풍이 불고 있다. 우리 제주의 소년 오연준이 부른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에 평화와 번영이 있다, 한 번 더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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