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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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건, 제주대 교수 교육학 전공/논설위원

지난번 편지에서 자신만의 공간에서 유배인이 되어보자는 말을 했었습니다. 자신을 닦는다는 뜻의 수기(修己)를 강조해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수기치인(修己治人)’이라는 말을 아실 겁니다. ‘자신을 닦고 남을 다스린다’는 의미로, 선비들의 정치에 대한 자세였지만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수기’란 욕망을 절제할 줄 아는 능력을 기르는 것으로 이것을 하지 못하면 사람을 다스릴 자격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수기’는 없고 ‘치인’만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수기없는 치인’의 문제를 우리는 현재 재판 중인 두 전직 대통령은 물론 갑질로 비난받고 있는 재벌들을 통해서도 확인하고 있습니다. 지도자들이기에 그들이야말로 당연히 자신을 갈고 닦았을 것이라고 우리는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의 믿음을 보기 좋게 배신했고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고 통제하지 않은 채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대했던 행태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최근, 어느 도지사 예비후보의 부동산 의혹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그는 공직에서 떠나 있을 때 부동산개발회사 부회장을 맡았지만 이는 직업 선택의 자유라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잠시 공직에서 떠나 있을 때’야말로 자신을 닦을 수 있는 ‘수기(修己)’의 좋은 기회였는데 대신에 그는 땅이나 사고파는 ‘수지(修地)’의 기회로 활용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분할을 통해 이득을 취하려고 했다는 ‘송악산 땅 투기’ 문제로 의혹이 확대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수기치인 대신에 수지치인(修地治人)을 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능력은 개인적 욕망의 확대에 불과했고 그래서 ‘치인’은 늘 위태로웠습니다. 욕망을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존심을 확보할 수 없었고 그래서 ‘치인’은 조직이라는 미명 아래 편 가르기가 될 수밖엔 없었습니다. 이런 문제를 알았을 젊은 지역일꾼이었던 도지사 예비후보가 왜 그리도 땅이라는 욕망에만 몰두했었는지 의아합니다. 혹시나 노회한 과거 세력들로부터 배우고, 도움 받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입니다.

문 대통령 역대급 지지율의 4가지 원인 가운데 하나가 소통과 겸손, 안정감 등 ‘개인기’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로써 그가 대단한 ‘수기’의 인물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치인’이 성공적일 수밖엔 없습니다. 그렇지만 대통령과의 돈독한 관계를 내세우는 도지사 예비후보는 정작 땅에만 관심을 두었지 과연 ‘개인기’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못된 소인들이 임금의 총애를 운운하며 권세를 도둑질 한다”던 조선 사림파의 시조 김종직의 꾸짖음을 감히 떠올리게 됩니다,

남아공 만델라 대통령이 로벤섬에서 20여년 유배생활하는 동안 무섭게 독서를 했고, 셰익스피어 전집은 모두 외웠다는 일화는 ‘수기’의 집념을 증거하는 좋은 예입니다. 그러나 만델라의 후계자인 주마 대통령이 범죄혐의만 783건인 채 불명예 퇴진을 하게 된 것은 오로지 대중친화력에만 의존하여 ‘치인’을 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혹독하게 갈고 닦지 않은 채 국민을 대표하려던 정치인은 항상 실패했습니다.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는 것보다 큰 욕됨은 없다(辱莫大於部知恥)”고 했지만 이 말은 ‘정치인이 수기를 하지 못하는 것보다 큰 욕됨은 없다’라고 읽어도 틀리지 않을 것이며, 지방선거 예비후보자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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