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봉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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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중 논설위원

정치인에게 뭘 던지는 행위는 분노 표출과 함께 상대에게 극도의 모멸감을 주려는 의도일 게다.

이슬람권에선 신발을 곧잘 던진다. 이곳에선 더러운 신발창을 보이는 게 모욕을 뜻한다. 신발은 상처를 크게 입히지 않고 시위 효과도 커 아랍국에선 종종 발생하는 위협행위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퇴임이 얼마 남지 않은 2007년 말 이라크를 깜짝 방문했다가 신발에 맞을 뻔한 일이 대표적이다. 기자회견 도중 한 기자가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항의하며 신고 있던 구두를 벗어 던진 거다.

물을 뿌리는 행위도 이유는 비슷하다. 물 세례는 종교적으로 회개와 정화의 의미가 있다. 아마 물 공격을 당하는 정치인에게 반성하고 죄를 씻으라는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

▲계란 투척이야말로 불만을 품은 사람에게 던지는 전형적 사례일 것이다. 크게 상처를 입히지 않으면서도 치욕을 극대화하는 데 제격이기 때문일 터다.

그래선지 계란을 맞은 정치인이 꽤 많다. 2007년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대구 서문시장을 찾은 이회창 후보는 머리에, 이명박 후보는 경기 의정부시 유세에서 가슴과 허리에 계란을 맞았다.

1999년엔 일본 출장길에 나선 김영삼 전 대통령이 김포공항에서 빨간색 페인트를 넣은 계란을 얼굴에 맞아 실명할 뻔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2년 대선 유세 때 아래턱 부분에 달걀을 정통으로 맞았다.

정원식 전 국무총리는 1991년 자신이 몸담았던 대학에서 고별 강의를 하고 나오다 극렬 학생들에게 계란과 밀가루로 뒤범벅이 되는 봉변을 당했다.

▲지난 14일 원희룡 제주지사 예비후보가 제주제2공항 건설을 위한 토론회 도중에 폭행을 당했다. 가해자는 제2공항반대대책위 부위원장으로 토론회 말미에 단상으로 뛰어올라가 원 후보에게 계란을 던지고 손찌검까지 했다.

원 후보가 제2공항 건설에 원칙적으로 찬성 입장을 표명해온 점을 고려할 때 가해자의 폭행은 그에 대한 반감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무리 민감하고 중요한 현안이라 해도 폭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이번 반민주적 폭력 행위는 개인을 넘어 도민들의 가슴에 깊고 큰 상처를 남겼다. 투표 말고 정치적 반대자를 심판할 수 있는 길은 있지도 않고 존재해서도 안 된다. 그게 우릴 지탱하는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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