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판사판 선거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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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업, 전략사업본부장 겸 논설위원

우리나라 3대 종교 중 하나인 불교는 신라, 고려시대 때 찬란한 꽃을 피웠다. 하지만 조선시대엔 음지에서 연명해야 했다. 강력한 억불숭유(抑佛崇儒) 정책으로 온갖 탄압을 받았기 때문이다. 승려는 하루아침에 천민 신분으로 전락했고, 도성(都城) 출입조차 금지됐다.

▲이에 승려들은 살아남기 위해 활로를 모색해야만 했다. 그 하나가 불법(佛法)의 맥을 잇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부는 속세를 떠나 깊은 산속에서 참선과 독경 등을 통한 수행으로 불법을 수호했다. 사람들은 이들을 일컬어 이판승(理判僧)이라 했다.

다른 하나는 사찰을 존속시키는 것이었다. 절을 지키고 있는 승려들은 기름이나 종이, 신발 등을 만드는 제반 잡역에 종사하며 폐사(廢寺)를 막았다. 때론 산성을 축조하는 노역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 같은 일을 하는 승려를 사판승(事判僧)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비록 역할이 달랐지만 서로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는 상호 보완적 관계를 가졌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불교의 교리(敎理)가 이어져 올 수 있었던 이유다. 결과적으로 지금의 현대 불교가 융성한 건 이 두 부류의 승려들이 자신의 소임을 다했기에 가능했다.

▲여기서 나온 용어가 이판과 사판이다. 전자는 ‘속세를 떠나 수도(修道)에 전심하는 일’을, 후자는 ‘절의 모든 재물과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일’을 뜻한다. 한데 두 단어를 합친 ‘이판사판(理判事判)’은 전혀 다른 의미다. 막다른 데 이르러 어찌할 수 없게 된 지경이 됐을 때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는 거다.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는 식이다. 그만큼 뾰족한 대안이 없어 상황이 절박하다는 거다. 거기엔 그 자체가 ‘끝장’이란 뜻도 담겨 있는 듯하다. 아마 조선시대 당시엔 승려가 된다는 게 벼량 끝에 몰린 인생의 마지막 선택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6·13지방선거가 2주 앞으로 다가왔다. 제주지역에선 모두 106명이 출사표를 던졌다. 허나 선거전은 ‘진흙탕 싸움’으로 치닫고 있다. 후보 간 상호 비방과 고소·고발이 극에 달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면 말고’식 무차별 폭로와 흑색선전도 난무하고 있다.

그야말로 이판사판 난타전이다. 언론밥을 먹은 이래 이런 선거판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오늘 또 어떤 폭로가 터져나올까. 솔직히 선거 후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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