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종 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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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망종(芒種)은 소만과 하지 사이, 음력 5월의 절기다. 그 즈음 까끄라기가 있는 보리와 밀 등을 거둬들이고 벼는 모내기를 한다.

‘오월이라 중하되니 망종 하지 절기로다/ 남풍은 때 맞추어 맥추를 재촉하니/ 보리밭 누른빛이 밤 사이 나겠구나/ 문 앞에 터를 닦고 타맥장 하오리라/ 드는 낫 베어다가 단단히 헤쳐 놓고/ 도리깨 마주 서선 깃내어 두드리니/ 불고 쓴하던 집안 졸연히 흥성하다’

농가월령가 오월령 앞부분이다. 누렇게 익은 보리를 거둬 도리께로 타작하는 부산스러운 농촌 풍정(風情)이 눈에 선하다. 굶주림으로 보릿고개를 넘어 온 농민들이 한 고비를 넘겼음을 ‘흥성하다’고 했다.

제주도에서도 보릿고개를 근근이 넘기며 설익은 풋보리를 불에 구워 먹기도 했다. 검불을 불살라 그을린 것이다. 그 진풍경을 ‘서포리’라 했다. 곯은 배에 보리 철을 얼마나 기다렸으면 익어 가는 보리밭가에서 설설 침이 끓었을까. 우리에겐 이런 혹심한 가난이 있었다.

입하가 지나면 만물이 아이처럼 쑥쑥 커 간다. 잡풀도 하루 다르게 자라 오른다. 장마철이 오기 전에 잡지 않으면 한 해 농사를 장담 못한다. 힘들어도 망종 즈음엔 매어 줘야 한다. 까딱하다 실농(失農) 가능성이 높다.

망종 즈음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망(芒)’은 까끄라기다. 뜻 그대로 까끄라기 있는 곡식을 거둬들이면서 논에 벼를 심어야 하는 절기가 망종이다. 좋은 절기다. 산엔 뻐꾸기가 울기 시작하고, 푸른 벌판엔 찔레며 온갖 들꽃들이 흐드러지게 핀다.

새도 알을 품는 시기다. 산란기에는 먹이 활동이 활발하므로 이 시기를 피해 심으면 피해가 덜하다 해서 망종 즈음에 모내기를 하지만, 실은 좀 이른 듯하나 직파(直播)하기에는 늦은 감이 있다. 까딱 실기(失機)하는 수가 있다. 인간과 새들의 먹고 먹히는 생존경쟁이 벌어진다.

망종엔 물과의 전쟁이 심각하다. 비가 귀해, 물이란 말만 들어도 지긋지긋해지는 때다. 갈민대우(渴民待雨), 하늘을 우러러 한목 내리는 목비를 비손해 기다린다. 비가 안 와 논이 타들어 갈 양이면 기우제를 지낸다. 농경시대 우리 농민들은 특히 망종 즈음 비가 내리면 ‘비가 오신다’고 했다. 얼마나 애타게 기다린 비인가.

음력 5월 망종 지나 초열흘에 내리는 비를 ‘태종우’(太宗雨)라 한다. 조선시대 태종이 죽기 전에 나라 안에 몹시 가뭄이 들어 아들 세종에게, ‘내가 죽어서 옥황상제를 만나 비를 내리게 해 달라고 부탁하겠다.’는 유언을 남기고 승하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비가 내렸다. 그 해 풍년이 들어 들녘에 격양가가 울려 퍼졌다 한다.

보리 베고 김매고, 망종 즈음이 얼마나 바빴으면 ‘발등에 오줌 싼다’고 했을까. 볼일 볼 틈마저 없다 함이다. ‘부지깽이도 일을 거든다’거나, 별 보고 나갔다가 별 보고 돌아온다‘ 한 말이 나올 정도로 바빴다.

양기가 왕성한 절기라 해 예로부터 5월 5일에 단오명절을 지냈다. 모내기를 위한 벼농사축제라 할 큰 명절이었는데, 오늘엔 지내지 않은 지 오래됐다. 시대의 물결은 세시풍습까지도 바꿔 놓는다.

시대가 변하면서 망종이 예전 같지는 않아도 절기는 불변이다. 초목들이 심록으로 갈아입어 성장(盛裝)했다. 지금이 생명력으로 충만한, 망종 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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