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던 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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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옥,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초빙교수/논설위원

‘기다리던 그 사람’은 지난 총선에서 어느 후보가 선거구호로 내건 슬로건이다.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지금 무엇을 주장하며, 앞으로 어떤 일을 하려는가’를 나타내는 게 슬로건이라면, 그 후보는 오래토록 정치를 준비해 온 사람 같았다. 이따금 플래카드가 바람에 펄럭이기라도 하면 그의 담백한 웃음이 감귤꽃 향기처럼 바람에 흩날렸다. 그러면 도시의 답답하고 지루한 공기가 상큼하게 정화되곤 하였다. 아, 그런 날은 얼마나 가슴이 설레던지, ‘저녁이 있는 삶’이 무색하도록 그가 그리는 살판나는 세상을 밤늦게 돌아다녔다. 슬로건의 목적이 자신의 꿈과 생각을 응축해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라면, 그는 적어도 특정 집단의 선거 프레임을 선점하고 있었다.

다시, 슬로건의 계절이 돌아왔다. 6·13 지방선거의 진영마다 후보의 철학과 비전을 담은 슬로건이 대장의 깃발처럼 휘날리고 있다. 과연 우리는 어떤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가?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정책수요조사를 통해 발표한 6·13 선거의 유권자 핵심의제는 부정부패 척결(25%), 청년 등 일자리 창출(15%), 지역경제 활성화(12%) 순이다. 유권자들은 우선 ‘부정부패 척결’ 차원에서 후보자 검증을 벼르고 있다. 이 과제는 2017년 19대 대선 의제와 유사한 기조이나, 2016년 20대 총선에 비해 11%나 높아진 기준이다. 온 나라가 후보들의 행보를 지켜보면서 ‘정직하고 청렴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이와 유사한 취지에서 교수신문이 전국의 대학 교수 550명에게 ‘우리 시대 공인에게 필요한 덕목이 무엇인지’를 설문한 적이 있다. 여기서도 절반에 가까운 이들(48%)이 고위공무원에게 가장 필요한 인성은 ‘청렴’이라고 답했다. 그들에게 가장 부족한 덕목도 청렴(32%)이었다. 시대가 바뀌어도 공직자에게 요구되는 최고의 자질은 청백리(淸白吏)인 셈이다. 청백리의 사전적 정의는 성품과 행실이 올바르고 무엇을 탐하는 마음이 없는 관리다. 이에 대해 우리나라 감사원은 ‘백성을 위해 봉사하는 관직수행의 능력을 갖추고, 품행이 단정하며,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정신을 가진 관리’로 규정하고 있다.

이 점에서 제주도의 선거전, 특히 도덕성 싸움이 치열한 도지사 선거는 ‘정책 실종’이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운동장을 제대로 달려가는 셈이다. 대통령과 언제든지 통화할 수 있는 ‘핫라인을 가진 도지사’라 해도 부정한 수단으로 재산을 축적하고 부패한 기득권층과 반칙적 특혜를 결탁한다면, 그의 큰 힘이 도민들에게 얼마나 위험한 적폐가 될까?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는 대통령에게도 민폐이리라. 반면, ‘제주가 커지는 꿈을 도민과 함께’라면서 부자마을의 특별회원권으로 저 혼자 고급식당의 진미를 즐긴다면, 그 찌질함이 도민들에게 얼마나 커다란 상처를 줄까? ‘제주가 낳은 백년만의 인재’에 대한 기대도 어머니에게 절망이 되리라.

이번 선거의 관건은 ‘누가 기실 정직한가’이다. 앞서 언급한 ‘기다리던 그 사람’의 정체도 나다니엘 호돈의 소설, ‘큰 바위 얼굴’의 주인공인 어니스트(정직)를 상징한다. 바위산과 닮은 위대한 인물의 등장을 기다리는 마을 사람들에게 있어 큰바위 얼굴은, 억만장자나 전쟁영웅·힘센 정치인이 아니라, 그 바위를 스승 삼아서 정직하게 살아온 어니스트였다.

그 어니스트처럼 ‘정직이 최선의 정책인 사람’을 우리도 기다리고 있다. 제주의 새로운 아침을 열어서, 탐라국 천년의 역사를 이어갈, ‘위대한 꿈의 도지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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