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담 감상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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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오름에 올라 눈 아래 펼쳐진 밭담을 굽어본다. 돌덩이를 쌓는 바지런한 손길들이 어른거리고 지금도 쉼 없이 흐르는 운동감으로 다가온다. 직선으로 흐르다 완만한 곡선과 만나 아우르고, 그랬다 다시 이어지는 절묘한 돌들의 동세가 유유하다.

누군가 길게 펼쳐진 저 제주 밭담의 흐름을 일러 흑룡만리라 했다. 무진장으로 길게 꿈틀꿈틀 이어지면서 이리저리 비틀거나 꼬이며 용틀임하는 모습을 떠올렸을 것이다. 눈앞의 장엄한 풍광에 경이의 눈이 번득였을 법하다. 공감한다.

하지만 제주 밭담은 하루아침에 쌓아 놓은 게 아니다. 석공들이 돌을 가공해 멋스럽게 쌓은 것도, 좋은 장비를 빌려 얹은 것도 아니다. 우리 선조들이 억세고 투박한 손으로 한 덩이 한 덩이 쌓아 축조한 놀라운 결과물이다. 그러니까 제주 밭담을 제대로 보려면 먼저 기술자가 쌓은 게 아니란 데로 눈을 돌려야 한다. 하르방 할망이 쌓고, 아방 어멍이 쌓고, 아지방 아지망이 쌓았다. 지켜보던 아이도 작은 돌멩이를 빈 구멍에 끼워 한 손 했다.

단순해 보이지만, 쉽지 않았다. 큰 돌을 굴려다 기초를 놓고 돌의 크기 차례로 쌓아 간다. 실은 원리란 게 별것도 아니다. 아랫돌 위에 올려놓는 돌이 무너지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때부터 숨찬 역사(役事)가 이어진다. 돌을 가슴 가득 안고 끙끙대며 겨우 무릎까지 올려놓고선 다시 사력을 다해 허리를 펴야 한다. 이때 젖 먹은 기운을 다 내야만 간신히 돌 하나가 올라간다. 한 덩이 돌을 쌓는 게 이렇다.

비바람에 잣벽이 무너져 내린 날엔 난장이 된다. 밭이 무너진 돌과 자갈과 흙으로 뒤덮여 버린다. 사람의 기를 팍 죽여 놓는다. 농사를 지으려면 원상 복원해야 한다. 하루 이틀에 되지 않는다. 한 달 두 달 쉬지 않고 무너진 돌덩이와 싸움을 벌인다. 사투(死鬪)다. 포클레인 같은 장비는 꿈도 못 꾸던 시절, 연장이라곤 호미 괭이 삽 삼태기가 전부였다. 순전히 몸으로 때웠다. 자연은 왜 선량한 시골사람들을 골탕 먹였던 걸까.

하늘에 하소연한들 무슨 소용이랴. 팔 걷어붙이고 돌을 가슴에 부둥켜안는다. 손이 시퍼렇게 멍들고 발이 찍혀 줄줄 피가 흘렀다. 이렇게 선조들이 피와 땀으로 올린 게 제주의 밭담이다.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시골서 크며 몇 번을 지켜보았을 뿐인데, 어찌 필설로 다하랴. 저 밭마다 굳건히 발 옴치고 앉아 있는 밭담을 쌓은 이들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다. 하지만 밭담은 온전히 우리의 유산이 됐다.

유채꽃 남실대는 제주의 풍치가 관광객들에겐 낭만이지만, 농부들에겐 현실이 듯 밭담 또한 낭만이 아니다. 누군가 말했듯 밭담에 코를 대면 할아버지 할머니 냄새가 난다. 그 냄새를 맡을 수 있어야 한다.

총 길이가 만리장성보다 긴 2만2000㎞라 추정한다. 참 길다. 그뿐인가, 네모, 세모, 원, 그것들의 변형으로 이뤄진 자연의 다양한 디자인, 감탄을 자아낼 수밖에 없다.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된 게 어찌 우연한 일이랴. 우마의 범접을 막고 방풍에 한 몫 하면서 덩달아 경작 면적도 넓혔다. 예술이고 낭만 이전에, 실용과 합리의 산물이다. 선인들이 장구한 세월 동안 한 덩이 두 덩이 쌓아 길이로 뻗은 근면의 견고한 탑. 밭담은 제주의 자랑스러운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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